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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관점]중세 경제구조 바꾼 페스트..“코로나, 4차 산업혁명 가속화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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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경제·사회에 미치는 파장]

스페인독감은 대영제국 쇠퇴·美 경제대국 부상 불러

코로나19 사태로 대공황 이후 최대 글로벌 경제위기

벼랑끝 자영업·소상공인 등 사회적 안전망 강화하고

규제 혁신·노동 개혁·산업 스마트화로 미래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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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쥐로 들끓던 중세 독일의 하멜른시에 마법 피리를 든 낯선 남자가 시장을 찾아온다. ‘쥐를 모두 없애줄 테니 금화 천냥을 주십시오.’ 제안이 통하자 이 사나이는 피리를 불며 쥐떼를 강으로 끌고 가 익사시킨다. 하지만 돈을 조금밖에 못 받고 쫓겨난 그는 얼마후 다시 나타나 피리를 불며 많은 아이들을 이끌고 외딴 동굴로 사라지는데···.” 14세기 중반 유럽 인구의 3분의1을 포함해 동서양에서 총 1억명가량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산되는 페스트(흑사병)를 배경으로 한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줄거리다.

쥐벼룩에서 기생한 페스트는 경제사적으로는 봉건제의 쇠퇴를 부채질하게 된다. 소작농이 급감하자 임금이 급등하며 영주와 농노 간 충돌이 증가했고 중소 영주 중 파산하는 사태가 잇따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유를 얻은 농노들이 자영농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공업 발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시장이 커지고 다른 지역이나 나라와의 교역이 늘어나는 등 화폐경제가 구축되며 부르주아라는 신흥 계급이 등장한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를 불러일으켜 서유럽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된다.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정복 과정에서도 감염병은 참혹한 재앙을 불러온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16세기에 잉카제국과 아즈텍제국을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천연두를 비롯한 감염병 확산을 주요 수단으로 활용했다. 유럽인들은 이미 내성을 가진 감염병에 원주민들은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바하마제도 등에 첫발을 디딘 뒤 100년이 조금 지나 원주민의 90%가량이 희생됐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미국 UCLA 지리학과 교수는 ‘총·균·쇠’라는 책에서 “유라시아대륙에서는 가로로 넓게 같은 기후대를 공유하고 많은 가축을 기르면서 사람들이 감염병에 나름 내성을 갖게 됐다”며 “하지만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세로로 길게 뻗어 기후대가 다르고 동서 간 산과 사막이 작물과 가축의 전파를 방해했다”고 분석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중남미에서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착취해 유럽으로 빼앗아갔다. 이는 화폐 증가에 따른 물가 상승을 가져오면서 상공업 발전을 촉진한다. 원주민들에게는 통곡의 역사이지만 유럽인들에게는 자본주의 발전의 기회가 된 것이다.

100여년 전 지구촌을 공포에 떨게 했던 스페인독감(1918~1920년)은 제1차 세계대전과 맞물리며 대영제국 쇠퇴와 미국의 경제 대국 부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주의 한 군부대에 퍼진 스페인독감은 그 다음달부터 미군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유럽에 널리 확산됐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영화 ‘1917’에서도 볼 수 있듯 각국 군인들은 불결한 참호와 전장에서 밀집생활을 한데다 굶주리고 면역력이 떨어져 바이러스에는 최고의 숙주였다. 당시 우리나라 14만여명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5,000만명가량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당시 유럽에 막대한 전쟁 물자를 제공하며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탈바꿈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빚을 갚기 위해 독일에 과도한 배상금을 물렸다. 하지만 독일은 돈을 마구 찍어내며 물가 폭등 사태를 초래했다. 당시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을 일으킨다. 미국은 1920년대 경기 호황을 보이다가 1929년 말 주가 폭락을 시발로 세계 대공황에 시달렸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지배에 의한 세계 평화)’의 토대를 놓는다.

그렇다면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가 가져올 경제·사회적 변화는 무엇일까. BC(before corona·코로나 전)와 AC(after corona·코로나 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로나 전과 후의 세상은 크게 다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기업 경영, 정부의 리더십 등이 모두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비(非)대면 접촉과 온라인 시장 확산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과정에서 자영업과 소상공인·비정규직 등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세계적으로 소비·생산·투자가 침체되며 실물경제가 질식 상태로 돌입했다. 식당·술집·노래방과 옷가게의 주인뿐 아니라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 인사동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김옥정(55)씨는 “임대료 부담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힘들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손님이 확 줄어 서빙 인력은 다 내보내고 직장에서 무급휴직한 아들이 나와 돕고 있다”고 털어놨다. 동대문의 집합상가나 명동·이태원 등을 보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옷가게가 적지 않다. 이태원에서 30여년간 옷가게를 한 전유성(58)씨는 “임대료와 관리비가 꼬박꼬박 나가 할 수 없이 문을 열어놓고 있으나 그전에 벌어놓은 것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며 “주변 공실 상가가 갈수록 눈에 띈다”고 전했다. 방문학습지 교사나 문화·스포츠센터 강사, 보험모집인 등 특수형태 근로자와 프리랜서들은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속도가 빨라지며 오프라인에 기반한 식당·카페 등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양극화 심화를 거론했다. 실제 온라인 쇼핑이나 음식·식품 등 배달 주문이 늘면서 배달대행사들은 호황을 맞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최대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배달의 민족’이 수수료 인상 논란에 휩싸이는 등 각 분야에서 양극화 심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업계도 이사철인데도 거래가 별로 없어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 공인중개업을 하는 서울 성동구의 이홍규(63)씨는 “지난 2개월간 받은 중개수수료가 거의 제로인데 그래도 과거 부동산 투자했던 게 올라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이사업체를 하는 경기도 구리시의 송영석(66)씨는 “이 사업을 5년 정도 더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접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공공기관과 대기업, 교수·교사를 중심으로 확산된 재택근무나 온라인 강의가 코로나19 이후에도 적지 않게 적용될 것”이라며 “화상회의나 온라인 쇼핑이 늘고 빌딩이나 상가의 공실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행·숙박 등 관광업은 그야말로 쑥대밭이다. 서울 도선동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장지임(54)씨는 “대실 수입이 급감하고 중국 관광객도 끊겼다”며 “10여년 전 모텔을 사 개조한 뒤 가격이 꽤 올라 버틸 여력은 있으나 언제까지 갈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공연·미술·영화 등 문화예술 산업도 빈사 상태다. 서울 서촌에서 소형 갤러리를 운영하는 박소영(39)씨는 “나름 활발하게 국내외 작가들의 기획 전시회를 열었는데 직원도 내보내고 두 달째 문을 닫았다”고 답답해했다.

수출업체나 제조업체들의 애로도 만만치 않다. 해외 온라인 쇼핑몰로 화장품을 수출하는 임희주(45)씨는 “일본·동남아 등 주문은 늘었으나 한 달 전부터 항공편이 90%나 줄어 물류난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영세 자동차부품사를 운영하는 한용철(56)씨는 “자동차 경기가 죽어 원청사에서 납품 물량을 줄이면서 가격 인하를 압박해 피를 말리는 심정”이라고 했다. 김원준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은 “미중 무역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 보호무역주의 회귀 추세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며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와 산업 스마트화를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애로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소기업·소상공인이 폐업 등에 대비해 부금을 넣는 노란우산공제금 지급은 2월부터 3월13일까지 1만1,79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8% 급증했다. ‘서울열린데이터광장’에 따르면 3월1~20일 서울의 식당·커피숍·카페·편의점 등 식품위생업소 1,600곳이 폐업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2곳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당초 5일까지 예정했던 ‘사회적 거리 두기’를 바이러스 증가세가 가속화되는 미국·유럽 등으로부터의 역유입 확대를 우려해 2주 연장했다. 김문수 경기신용보증재단 상임이사는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긴급재난지원금 규모와 대상, 지급 방법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곡(哭)소리가 커지고 자살 증가도 우려된다”며 “신속한 집행을 통해 이들의 숨통을 트일 수 있게 하는 게 시급하다”고 힘줘 말했다.

코로나19를 기존 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한편 4차 산업혁명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권오경 회장은 “정부가 이번에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시범 실시했으나 잘 이뤄지지 못했다”며 “코로나19 이후 원격의료에 대한 공감대 형성, 바이오·헬스케어 집중 양성, 원격수업 확대, 산업과 행정의 디지털 혁신, 감염병 환자 돌봄 로봇 구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우일 회장은 “바이오·헬스케어 산업뿐 아니라 자율주행차와 로봇 등 인공지능, 빅데이터 산업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교육부가 대학 강의에서 온라인 교육 비중이 20%를 넘지 못하도록 한 규제를 한시적으로 푼 것을 계속 시행해야 대학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코로나19 사태로 저출산이 심화될 것이라며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연구개발(R&D)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어 “올해 기업들의 R&D 투자가 감소하고 시중 부동자금의 벤처·스타트업 투자도 식었다”고 염려했다. 취업시장도 막혀 가뜩이나 공무원시험에 몰리는 취업준비생들이 더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한국을 ‘방역 모범국’으로 꼽고 있으나 그것에 취하지 말고 코로나19 이후 경제위기에 철저히 대비하는 국가적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게 이들의 견해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구조조정에 맞춰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하며 기업 수익과 국가 재정 악화를 감안해 규제혁신과 노동개혁을 적극 추진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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