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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 피는 코로나보다 진하다… 2명 살리고 1명 못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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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치 환자 혈장, 3명에게 투여]

중증 폐렴 70대 완치·60대 퇴원… 폐암말기 40대 환자는 끝내 숨져

서울 첫 사망… 콜센터 직원 남편

중증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 2명이 완치자의 혈액에서 '혈장(血漿)'을 투여받은 뒤 완치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혈장 치료를 통해 중증 코로나 환자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은 7일 중증 코로나 환자 3명을 대상으로 혈장 치료를 했다고 밝혔다. 치료 결과, 70대 남성과 60대 여성 2명은 완치됐고, 여성은 퇴원했다. 폐암 말기였던 40대 남성은 숨졌다.

혈장 치료는 완치 환자의 혈액에서 바이러스 항체가 형성되는 점을 이용, 완치자의 혈장을 치료 중인 환자에게 수혈해 바이러스를 제압하는 치료법이다. 완치자 혈액 속의 바이러스 항체를 환자에게 옮겨주는 것이다. 혈장은 혈액 중에서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이 빠진 액체 성분을 말하는데, 누런빛을 띤다. 혈장은 영하 20도에서 보관하면 2년까지도 치료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같은 혈액형 혈장을 투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혈액형 혈장도 투여할 수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최준용·김신영 교수 연구팀은 혈장 치료 후 완치된 두 환자의 사례를 대한의학회 국제 학술지 JKMS에 게재했다.

◇완치자 피가 70대 남성, 60대 여성 살려

최준용 교수는 "코로나 감염으로 중증 폐렴이 생긴 환자 2명이 혈장 치료 결과, 완치됐다"고 밝혔다. 두 환자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호흡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는데 기존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던 말라리아·에이즈 치료제는 큰 효과가 없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코로나 완치자의 회복기 혈장을 주입하자 상태가 호전된 것이다.

조선일보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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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세 남성은 기저 질환은 없었지만 폐렴과 호흡 곤란이 심각했다. 의료진은 병세가 악화하자 20대 남성 완치자의 혈장 500mL를 12시간 간격으로 2회 투여했다. 이 환자는 혈장 치료 이틀 후부터 상태가 나아졌고, 부작용 없이 완치됐다.

기저질환으로 고혈압이 있었던 67세 여성도 같은 방식의 치료를 받았다. 바이러스 농도가 떨어졌고, 지난달 말 퇴원했다. 두 사람의 폐는 X선 촬영에서 하얗게 보일 정도로 폐렴이 중증이었지만 혈장 치료 후 폐렴 증세가 눈에 띄게 나아졌다.

최준용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다른 치료도 병행했기 때문에 '회복기 혈장만 효과가 있었다'고 보는 것은 과장이고, 혈장 치료가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는 근거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 치료가 모든 환자에게 권장된다고 권고하기는 어렵고, 중환자 치료 방법의 하나로 시도해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폐암 말기 환자는 숨져, 서울 첫 사망자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혈장 치료를 받은 3명 가운데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사는 44세 남성은 7일 숨을 거뒀다. 병원 관계자는 "폐암 말기라 혈장 투여는 임종 전 가족 면회까지 환자가 버틸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며 "덕분에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166명의 집단 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직원의 남편이었다. 남편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면서 아내가 구로구 콜센터에서 생계를 책임져 왔는데 일터에서 코로나에 노출됐다. 아내가 지난달 18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다음 날 남편과 10대 아들·딸도 확진됐다. 일가족 4명이 모두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마포구청에 따르면 현재 A씨의 아내와 아들은 완치돼 퇴원했고, 딸은 아직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혈장 치료제 대량생산 어려워"

의료계에서는 특별한 코로나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당장 65세 이상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혈장 치료법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혈장은 일반적인 약과 달리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완치자의 자발적인 헌혈 외에는 얻을 방법이 없다. 최준용 교수는 "병원에서 혈장 기증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며 "코로나 완치자가 원할 때 혈장을 기증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임채승 고려대 구로병원 진단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나서서 6000명이 넘는 완치자가 혈장을 기부하도록 독려하고,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이 나서서 이 혈장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 권준욱 부본부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중증 환자 치료에 중요하다고 보고 회복기 혈장 확보, 투입 체계를 가동할 수 있도록 며칠 내로 지침을 내놓겠다"고 했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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