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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리뷰] 뮤지컬 '리지' 진실보다 더 중요한, 이들이 만드는 견고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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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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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보든 집안의 부유한 사업가이자 구두쇠로 소문난 앤드류와 그의 부인 에바가 집안에서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된 일명 '리지 보든 사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는 둘째 딸 리지. 그러나 물증이 없어 무혐의로 풀려나 현재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120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 드라마,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다.

뮤지컬 '리지'는 스티븐 체슬릭 드마이어 작곡ㆍ작사, 팀 매너 대본, 알렌 스티븐스 휴잇 작사로 1990년 4곡의 실험극으로 시작한 뒤, 20년간의 작품 개발을 통해 2009년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 초연됐다. 한국에서는 '오펀스', '카포네 트릴로지' 등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활약을 하고 있는 연출 김태형과 음악감독 양주인 등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모여 한국형 '리지'를 완성했다. '리지'와 '브리짓'의 관계를 집중해서 조명한 영화와 달리, 브리짓은 사건의 관찰자로 등장하며 리지의 언니 '엠마'와 리지의 이웃이자 친구인 '앨리스'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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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130분간에 사건을 전부 담아야 한다는 점, 대부분 성스루(Sung Through)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다소 이야기가 빠르게 흘러가 스토리 파악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인물의 관계도가 알려진 것과 조금 달라진 것을 제외하면 중요한 포인트는 다 들어가 있다. 리지가 비둘기를 아꼈다는 점이나, 독약을 구하려 했다는 점 등이다. 실제 사건을 찾아보거나 공연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프로그램 북을 참고해서 공연을 보면 좀 더 극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속 내용으로 일련의 사건들이 조금 터무니없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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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진실을 알 수도 없는 이 이야기를, 2020년 한국에서 보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 살인 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하는 추리를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구구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전개의 흐름상 누군가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약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아무래도 이 무대가 4인의 여성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연대'에 가깝다. 2막에서 마치 탈피를 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무대 위의 의상 체인지가 그러하다. 등장부터 1막과는 정반대의 스피릿을 보여주는 리지부터 마지막까지 변화를 망설이다 옷을 갈아입는 앨리스까지. 비밀을 은닉하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하나의 견고한 성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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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회적 이슈가 여성을 누르고 분노케 할 때 여성들은 시위와 청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리지'는 예술로써 그 목소리를 낸다. 이 작품을 선보이기에 참으로 시의적절한 때가 아닌가. 코로나19의 영향이 클텐데도 무대를 강행해야만 하는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 강렬한 록 음악은 이 작품을 향한 기대감을 한층 더 증폭시킨다. '저항'의 상징인 록을 4명의 내로라하는 여성 배우들이 무대를 꾸민다. 형식을 파괴하는 네 귀퉁이의 스탠딩 마이크는 관객과 눈을 맞추며 관객의 심장을 한층 더 빠르게 뛰게 한다. 마스크에 막혀 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함이 아쉽다.

배우 유리아, 나하나, 김려원, 홍서영, 최수진, 제이민, 이영미, 최현선. 이름만 들어도 실력이 보장된 8인의 배우가 출연하며 오는 6월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공연한다.

사진제공_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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