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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노정태의 시사철] 공수처법·비례당 선거법… 앨리스,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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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와 ‘법률적 불법’

조선일보

노정태 철학 에세이스트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에 빨려든 앨리스. 하트 킹이 군림하고 하트 퀸이 다스리는 카드 왕국의 재판에 휘말렸다. 여왕이 만든 타르트를 훔쳤다는 혐의로 하트 잭은 고발당했고 앨리스가 증인석에 앉았다. 요술의 힘이 풀리고 있어서인지 몸이 점점 커지는 앨리스를 보더니, 왕은 책에 뭔가를 끄적거리고 낭독한다. “규정 42항. 키가 1마일이 넘는 사람은 모두 법정을 나가야 한다.”

키가 1마일이 안 된다고 항변하자 여왕은 거의 2마일이나 된다고 대꾸한다. 원래 있던 규칙도 아니고 방금 만들어낸 걸 봤는데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하트 킹은 "이건 책에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규칙"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그건 42항이 아니라 1항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앨리스의 논리적 반박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끝없이 계속되는 부조리와 말장난을 더는 참지 못해 앨리스가 들고일어나면서 재판은 난장판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논리학, 물리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감을 제공해온 소설이다. 그 목록에 철학과 정치학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가 말한 '법률적 불법'과 우리의 정치적 풍경이 어렵잖게 겹쳐 보이니 말이다.

나치는 1933년 3월 총선에서 43.9%를 득표했고, 647석 중 288석을 차지했다. 과반이 못 됐다. 하지만 야당이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으로 분열해 있었고, 1933년 2월 발생했던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의 범인을 공산당으로 몰아가면서 권력을 공고화했다. 결국 나치는 모든 국가권력을 총통에게 이양하는 '수권법'을 통과시킨 후 독재 체제를 완성했다. 그 모든 과정이 형식적으로는 모두 '합법'이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 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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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학자이자 법철학자로서 그런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라드브루흐는 근본적 회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까지만 해도 그 또한 법실증주의자였다. 법은 어떻게 만들어졌건 법이고 그러므로 정당성을 지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폭력과 협박 및 공작으로 권력을 잡은 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에 법을 끼워 맞출 때, 그걸 과연 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년의 라드브루흐가 발표한 최후 논문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은 바로 그 주제를 다룬다. 정의를 전혀 추구하지 않고, 진실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왜곡하는 그런 조항은 아예 법적 성격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라드브루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히틀러 인격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히틀러에게서 유래하여 또한 나치의 모든 '법'의 본질로 귀결되었던 특성은 바로 진실에 대한 감각과 법에 대한 감각의 총체적 결핍이다. 진실에 대한 감각이 없었기 때문에 히틀러는 수사적으로 유용한 것이면 언제든지 양심의 가책도 없이 뻔뻔하게 진실이라고 우겨댈 수 있었다. 히틀러는 법에 대한 감각이 없었기 때문에 언어도단의 자의를 주저 없이 법률로 둔갑시킬 수 있었다."

진실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하다 싶으면 아무렇게나 우겨대는 자들.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것을 심지어 법으로 만들어버리고 남에게 강요하다가 자신들이 불리해지면 지키지 않는 자들. 그들의 행태는 나치와 다를 바 없다. 인격적으로 히틀러와 닮았다. 독일의 양심 구스타프 라드브루흐의 진단에 따르면 그렇다.

개정된 선거법과 그 적용을 둘러싼 논란을 그저 '웃기는 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그래서 그렇다. 법이란, 특히 선거의 규칙인 선거법이라면, 긴 토론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 법은 지켜야 법이다. 그런데 여당은 자신들이 억지로 통과시킨 선거법을 되레 어기고 있다. 의석 하나라도 더 챙겨보겠다고 그 편에 붙었던 군소 야당들 또한 마찬가지다. 마치 히틀러와 나치처럼, 진실에 대한 감각, 법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부재하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상황도 그렇다. 하트의 왕과 여왕은 원래 있지도 않았던 규칙을 만들더니, 1항도 아닌 42항을 '가장 오래된 규칙'이라고 우기고, 심지어 재판을 끝내지도 않은 채 '일단 처형하고 나중에 선고하라'고 목청을 높인다. 1865년 루이스 캐럴이 처음 발표할 때만 해도 이 내용은 순수하게 논리적인 농담일 뿐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의 나치 정권 시기, 그리고 21세기의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로서는 문득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기들이 억지로 만든 선거법이 부당하다며 선관위에 항의하는 그들의 모습을 앨리스처럼 순수한 아이 눈으로 바라보자. 저 하트의 왕과 여왕이 우겨대는 난센스와 대체 무엇이 다른가? 공수처법이나 소위 '민식이법' 등, 현행 선거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협상 테이블에 올랐던 다른 악법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적 원한 감정을 들쑤시고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해서,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를 법으로 만들어놓았다. 우리가 앨리스도 아닌데 대체 왜 이런,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이상한 나라에 살게 되었을까?

딸 입시 의혹에 대한 조국 전 장관의 답변이 문득 떠오른다. "기존 법과 제도를 따르는 것이 기득권 유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옳지 않아도 법이다, 내 자식은 합법적 기득권이다, 이런 소리다. '법률적 불법'에 따라 레지스탕스를 처벌한 나치 법률가들과 뭐가 다른가.

법에 대한 존경심을 품은 민주주의자라면 이런 식일 수는 없다. 라임 사태 등 권력 연루 의혹이 제기되는 비리에 대한 수사를 가로막기 위한, 칼자루를 쥔 검찰총장을 어떻게든 주저앉히려 드는 정치 공작임이 훤히 보인다. 그런데도 어쩌면 이렇게 당당하고 뻔뻔스러울 수가 있는가. 권력을 틀어쥐고, 그 권력으로 돈을 벌겠다는 목적의식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하다. 바야흐로 권력과 부의 무한 증식을 꾀하는 '정치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코로나와 마찬가지다. ‘정치 코로나’ 역시, 일단 막고 봐야 한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이런 부조리와 부도덕은 임계치를 넘기면 걷잡을 수 없다. 불의한 자들이 권력을 잡고 자신들의 탐욕을 법으로 만들면, 결국 사회의 폐가 굳고 심장이 멎게 된다. 국민의 건강한 상식과 평범한 도덕을 지켜야 할 때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고, 투표하러 가자.

[노정태 철학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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