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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아무튼, 주말] 먹을 땐 몰랐는데… 대창 뒤집다보니 내 속도 뒤집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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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창 손질체험 해봤더니

양·대창은 먹을 때마다 아쉬운 음식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양과 고급스럽게 기름진 대창은 맛있지만 비싸서 양껏 먹은 기억이 드물다. 내로라하는 전문점의 경우 1인분(160~200g)에 3만2000~3만3000원으로, 소고기 꽃등심 뺨친다. 서울 마포에 있는 '청춘구락부' 손형석(49) 대표는 "양·대창은 원재료 자체 가격도 가격이지만 워낙 손이 많이 가서 인건비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체 얼마나 손이 가길래? "직접 해보고 싶다"고 하자, 손 대표는 흔쾌히 허락했다. "대신 단단히 각오하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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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창 손질은 힘도 들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서울 마포 양·대창 전문점 ‘청춘구락부’에서 하루 사용할 분량을 다듬는 데 세 사람이 세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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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손질 마치니 손가락이 부들부들

점심 영업이 끝나가는 지난 7일 오후 1시 식당에 도착하니 사각형 플라스틱 통에 물에 젖은 카펫처럼 보이는 물건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손질 전 양이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것처럼 뽀얗고 매끈하지 않았다. 주방을 책임지는 조준섭 과장이 꽃 줄기나 나뭇가지 자를 때 사용하는 화훼 가위를 건넸다. "껍질을 전부 벗겨내는 겁니다. 가위로 표면에 흠집을 살짝 내세요. 흠집 부위를 손끝으로 쥐고 잡아당기면 껍질과 속살이 분리될 거예요. 그럼 양손으로 껍질과 살을 움켜쥐고 조금씩 잡아당기세요."

반추동물인 소는 위가 4개 있다. 첫째가 양, 둘째가 벌집, 셋째가 처녑, 넷째가 홍창(막창)이다. 전문점에서 사용하는 양은 대부분 뉴질랜드산이다. 손 대표는 "사료를 먹이는 우리나라 소보다 풀을 먹여 키우는 뉴질랜드 소의 양이 훨씬 맛있다"고 했다. "억센 풀을 소화하느라 위가 더 많이 활동해 식감이 더 탄탄해요." 양은 길이가 80㎝, 폭이 15㎝쯤 됐다. "업계에서 '700업(up)'이라고 부르는 양만 사용해요. 무게가 700g 이상 나가는 양이라는 뜻이에요. 저렴한 양·대창집에서는 300~500g짜리도 쓰지만, 식감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맨손으로는 미끄러워서 잡을 수 없어 목장갑을 꼈다. 물에 젖은 스티커를 뜯어내듯 끄트머리를 겨우 손으로 잡고 잡아당기자 껍질이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제 양손으로 잡고 확 잡아당기면 끝일 줄 알았지만, 웬만큼 힘을 주지 않고서는 껍질과 속살이 분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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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지방 하나라도 남김없이 제거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기 때문에 꼼꼼하게 작업해야 한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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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을 벗겨냈다고 끝이 아니었다. 양을 뒤집어 반대편에 붙은 작은 지방 덩어리와 얇은 근막(筋膜)을 제거해야 했다. "지방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요. 막이 남아 있으면 질기고 이 사이에 껴서 손님들이 컴플레인(항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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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손질한 양(왼쪽)과 손질 전 모습.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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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 뒤집어주는 대창 손질

대창은 소의 큰창자다. 소 배 속에 둥그렇게 나선원반형으로 말려 있는데, 다 펴면 길이가 30m쯤 된다. 손 대표는 "소창에 가까운 쪽은 너무 얇고 직장 쪽에 가까운 건 너무 두꺼워서 가운데 10m만 구이용으로 쓴다"고 했다. 곱창은 소의 작은창자(소장)다. 대창은 대개 국내산이다. 한우와 육우의 대창 모두 국내산으로 유통된다. 손 대표는 "육우 대창이 더 기름 많고 맛있지만 따로 납품받기 힘들어 육우·한우 대창을 섞어 쓴다"고 했다.

1m 길이로 미리 잘라놓은 대창을 들어 올리니 알사탕 같은 지방 덩어리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지방에 뒤덮여 대창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가 구워 먹는 대창은 겉과 속을 뒤집어준 것이다. 구운 대창 속 고소한 맛의 정체를 '곱(소화액)'이라고 흔히 알지만 실은 열을 받아 녹은 지방이다. 조 실장은 "지방을 절반 정도 뜯어내라"고 했다. "지방을 덜 제거해야 무게가 더 나가서 식당 입장에선 좋지만 손님이 드시기엔 너무 느끼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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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창 겉과 속을 뒤집어주는 작업.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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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과장은 지방을 걷어낸 대창의 한쪽 끝에 쇠꼬챙이가 살짝 걸리게 하더니 안으로 확 찔러 넣었다. 그러자 대창의 표면이 뒤집어지면서 지방 덩어리들과 함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손으로 대창을 잡고 다른 손으로 꼬챙이를 밀어 넣기를 계속 하자 겉과 안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양손으로 느슨하게 잡고 주물러 지방이 대창 안에 고루 분배되면서 일정한 굵기가 되도록 해주니 순대 혹은 소시지 비슷해졌다.

양과 대창에서 제거한 껍질과 지방을 보니 그 양이 상당히 많았다. 작업을 마친 양은 20~25%, 대창은 50%쯤 무게가 줄어든다. 밀가루와 소금으로 힘껏 비벼 물로 잡내가 나지 않도록 깨끗하게 씻은 뒤 과일즙 등을 섞어 만든 양념으로 마사지해준 다음 하룻밤 냉장고에 숙성시켜 손님상에 가져가 굽는다. 셋이서 양 30개와 대창 70m 손질하는 데 3시간쯤 걸렸다. 팔 전체가 욱신거렸지만 특히 양 껍질을 잡아당겨 벗기느라 힘주고 있었던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 실장은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줄어서 이 정도지, 한창 바쁠 때는 전 직원이 달라붙어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손질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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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에 지글지글 익고 있는 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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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창 전문점 뺨치게 집에서 굽는 비법

양·대창을 집에서 직접 구우면 훨씬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인터넷에서 잘 손질된 양·대창이 다양한 가격대에 판매되고 있다. 대창을 집에서 구우면 숯불을 사용해 굽는 전문 식당 같은 불 맛을 내기 힘들다. 하지만 이 불 맛을 '커닝'하는 방법이 있다. 대파를 석쇠에 끼워 가스불에 겉이 살짝 타게 구워 대창과 함께 굽는다. 에어프라이어에 거뭇거뭇해진 대파를 깔고 대창을 얹고 다시 대파로 덮어 섭씨 200도에서 약 15분, 뒤집어서 180도에서 5분, 대창을 한입 크기로 잘라 160도에서 5분 구우면 어느 정도 불 맛이 밴 대창을 먹을 수 있다. 대창은 기름이 엄청나게 나오니 에어프라이어 세척할 때 각오할 것. '양은 겨드랑이에 잠깐 끼웠다가 먹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빨리 구워야 부드럽고 맛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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