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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손수조 “'학도병 공천'은 그만… 청년 정치인 정당서 길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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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과 맞짱떴던 손수조

조선일보

손수조는 “코로나19 때문에 아이 맡길 곳이 없다”며 “서울 암사동 집 근처 놀이터에서 만나자”고 했다. 지난 6일 그 놀이터로 다섯 살 딸과 세 살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이 “엄마, 그네 밀어줘” 하는 바람에 인터뷰가 자주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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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에서도 청년을 ‘학도병 공천’ 한다는 비판이 많다. 당세가 약한 지역에서 ‘흥행 불쏘시개’로 청년 후보를 소비한다는 지적이다. ‘학도병 공천’에서 손수조(35)를 떠올렸다. 8년 전인 2012년 총선에서 문재인 현 대통령과 대결했던 27세 신인. 그의 경력은 ‘여고(부산 주례여고) 학생회장’, ‘홍보회사 1년 재직’ 두 개가 전부였다. 소위 ‘듣도 보도 못한’ 초짜 정치인. 손씨는 2012년과 2016년 두 번이나 집권 여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 그것도 보수 정당의 텃밭인 부산(사상)에서다. 하지만 모두 떨어졌고 정치판을 떠났다. 선거를 열흘가량 앞두고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곳은 정치판이 아닌 서울 강동구 암사동 주택가의 작은 놀이터였다.

20대에 뛰어든 청년정치…"과자에 맞고, 어린애 취급 당해"

손씨는 이준석(35) 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과 정은혜(37) 더불어시민당 소속 국회의원 등과 함께 청년정치 1세대로 분류된다. 이들이 지금도 활동하는 것과는 달리 손씨는 정치판을 떠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대권을 위해 본인을 이용했다는 비판이 있다.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한 나의 길이었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정치를 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결국 당선에 실패했다. 박 대통령이 꽤 미안해했다던데.

"아니다. 내가 결정한 건데, 대표님(박 대통령)이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대표님도 나도 국민을 위해 일하는 건데, 대표님 성향으로 봐서도 그런 감정은 갖지 않았을 거다."

―이번 총선에서도 각 정당이 청년정치인을 공천했지만, 험지로 보내거나 유력 정치인과 맞붙인 경우가 많다. '학도병(學徒兵) 공천'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8년 전 내가 처음 정치에 나섰을 때는 청년정치라는 단어가 없었다. 지금은 청년에게 가점을 주는 등 그때와 비교하면 여건이 꽤 좋아진 거 같다. 그래도 청년이 공천받은 곳은 주로 험지다. 비례대표 당선권에도 청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직 멀었다고 본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 공천 시스템은 정당에서 이길 사람 한 명을 찾는 거다. '청년=승리'라는 공식이 성립하면 공천하겠지만, 그런 청년정치인은 몇 안 된다. 그렇다면 이길 수 있는 청년정치인을 길러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본을 보면 '마쓰시타정경숙'이 있어 청년정치인이 길러지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다. 그냥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거다."

마쓰시타정경숙은 파나소닉의 창업자인 고(故)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70억엔을 들여 1979년 설립한 정치학교다. 22세부터 35세 이하의 청년 가운데 논문과 면접, 집단 토론 등을 거쳐 뽑는다. 매년 200여 명 응모하는데, 합격자는 10명 이내에 불과하다. 일정 기간 교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정치학·경제학 등을 배우고 자위대 체험 입대, 매일 아침 조깅 등도 해야 한다. 입학금·수업료는 내지 않으며, 매달 생활비(20만엔)가 지급된다. 노다 요시히코 전 일본 총리 등을 배출했다.

―미래통합당에도 청년 조직이 있는데.

"새누리당 당시 중앙당 청년위원장은 1년 임기였다. 그런데 위원장이 바뀌니까 밑에 있는 조직이 와르르 무너지고, 사람이 모두 바뀌더라. 조직 연속성이 없으니, 청년을 길러낼 수가 없고, 당 안에서 청년정치인이 크기가 어렵다. 핀란드를 보면 현재 총리가 나와 동갑인 여성인데, 정당 내에서 길러져서 벌써 정치를 한 지 10여 년이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시스템이나 정당 조직을 바꿀 수 없다면, 총선 때 비례대표 당선권에 화끈하게 배치하거나 승리가 확실한 곳에 전략공천해야 청년정치인이 등장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청년을 다 그렇게 배치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이대로는 계속 선거철에만 반짝 소비되고 끝날 것으로 본다."

조선일보

2016년 4월 손수조가 두 번째로 부산 사상구 총선에 출마했을 때 모습.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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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험지가 아닌 양지에서 공천을 두 번이나 받았는데.

"나는 집권당의 현직 당협위원장인데도 지역구 행사장 가보면 과자를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어린애라는 거다. 내 의자를 빼버리기도 했고, 나에 대한 소개도 안 하는 경우가 있었다. 모멸감을 느끼게 하고 나 자신이 스스로 주저앉게 했다. 또 어린 내가 당선되면 오래 할까 봐 걱정하는 당내 경쟁자가 많았다. 민주당 후보와 일대일로 싸우는 게 아니라, 1대4로 싸웠던 거다. 그렇게 버틴 4년 동안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청년정치인이 되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나.

"자신만의 철학이다. 두 번째 선거(2016년 4월) 당시 현수막에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캠프에서 있었다. 나는 넣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나빠서 빼자는 참모들도 있었다. 너무 헷갈렸고, 고심 끝에 결국 넣었다. 나만의 철학이 있었으면 고민 없이 갔을 거 같다. 복지나 북한 문제 등을 놓고도 이런 일이 수없이 많다. 나는 아직도 '가치관이 뚜렷이 서 있지 않구나'라고 느끼고 있다. 지금 내가 정치에 다시 뛰어들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맞짱 떠보니…집단이 더 문제라는 생각

손씨는 2015년에는 동갑내기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딸과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손씨가 고교 학생회장이던 시절 근처 학교의 학생회장 출신이다. 지금은 서울시내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는 나오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내가 기진맥진했다. 특히 두 번째 선거(2016년)를 준비하는 4년이 너무 힘들었다. 날마다 경쟁이었다. 경쟁자들은 내가 경쟁력 없다는 험담을 매일 분석이랍시고 올렸다. 이때가 갓 서른이다. '애가 뭘 하겠느냐'는 얘기를 하더라. 사방이 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언제 처음 만났나.

"부산 사상 유세장이었다. 생각도 안 했는데 차 안에 타라고 해서 탔다. 정말 말수가 없더라. 정말 딱 필요한 말만 했는데, '이길 수 있어요'라고 하더라. 한번은 내가 30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약한 적이 있다. 그때 논란이 있었는데, 대통령이 손을 잡으며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세요'라고 하더라."

―상대했던 문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이 문 대통령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훈훈하다', '젠틀하다'. 선거 당시 사상에서 문 대통령과 30번 넘게 마주쳤다. 행사에 가면 '아, 손수조 후보님 오셨어요'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은 상품인 거 같다. 포장도 잘돼 있고, 외모도 그렇다. 선거하면서 좋은 상품을 가져와서 그 집단이 옹립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 대통령을 옹립한 집단은 굉장히 고집스러웠던 것 같다."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느꼈나.

"선거가 진행되면 서로 상대방 캠프에 하는 액션이 있다. 당시 문 대통령 캠프에서 '손수조는 인사하다가 상대가 사상구민이 아니라고 하면 손을 놔버린다더라'라는 식의 마타도어(흑색선전)를 돌렸다. 그리고 '손수조 엄마는 이렇더라, 아빠는 이렇더라'라는 비난을 일삼았다. 한번은 우리 엄마가 미용실에 있는데, 미용실에 온 사람이 '손수조 엄마는 어쨌다'며 비난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내가 손수조 엄마다'라고 하니까 깜짝 놀라며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 자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조국 정국 등을 보면, 문 대통령을 둘러싼 사람들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도 주변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나. 박 대통령이 퇴진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

―앞으로 뭘 할 건가.

“정치를 하는 동안 ‘정치인은 울어서는 안 된다’는 말 때문에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삶을 살았다. 나는 국문학을 전공했고, 시를 좋아하고 원래 눈물도 많다. 이제 온전한 삶을 사는 거 같다. 물론 다시 출마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내 심장이 뛰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것이 꼭 출마만은 아니지 않나.”

[곽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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