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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아무튼, 주말] ‘왕가네 둘째딸’이 기계치 교수님 온라인 강의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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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B급 자막 등 탈권위 동영상 강의 인기

코로나 사태로 대학들이 전면 온라인 수업에 들어간 지 한 달. 한편에선 어려움을 호소하나, 한편에선 밀레니얼 취향에 적중한 유머 코드로 인터넷 스타가 된 교수도 있다.



"안녕, 난 '놈펭이'라고 해. 펭수 사촌 놈펭이. 교수님이 동영상 수업 부끄럽게 생각해서 코로나 끝날 때까지 내가 대신 수업을 하려고 해." 펭수 짝퉁인가 싶었더니 교수 아바타란다. 달린 입은 그저 장식. 입 대신 팔로 얘기한다. 교수는 목소리와 손가락으로만 찬조 출연. 등장인물 둘이 더 있다. '베타카'란 이름의 알파카 인형과 '기역(ㄱ)' 모양으로 생겨 '기억이'란 이름의 공룡 인형. 각각 일본·미국 유학생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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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을 등장시킨 세종대 물리천문학과 김용선 교수의 수리물리학 동영상 수업. 펭귄 인형이 김 교수의 아바타로 등장하는 ‘놈펭이’다. 한 수강생이 트위터에 올린 영상이 73만5000뷰를 넘길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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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강생이 트위터에 올려 조회 73만5000뷰나 기록한 세종대 물리천문학과 김용선(36) 교수의 수리물리학 동영상 수업이다. 유치원 수업도 아니고 대학 강의에 웬 인형극 하겠지만 김 교수는 "진지한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라고 했다. "10여 년 전 스위스 CERN(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에서 박사과정 연구원을 하면서 화상 회의를 많이 해 화상의 장단점을 잘 아는 편"이라며 "학생들이 감정이입할 등장인물이 있으면 집중도가 높아져 인형을 등장시켰다"고 설명했다. 인형 마니아는 전혀 아니다. 강의 전날 부랴부랴 백화점으로 달려가 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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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감성 담뿍 담긴 김용선 교수의 강의 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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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분 수업에서 초반 5분 인트로(안내) 시간에 인형들이 등장해 그날 수업을 설명한다. 수강 원칙 공지에도 "어길 시 학점이 'C로나(코로나 패러디)'올 수 있다"며 '병맛(B급) 코드'를 잃지 않았다. 김 교수의 논리는 명쾌하다. "학생은 돈을 내고 학교에 다니고 교수는 그 돈을 받는 사람이다. 최대한 학생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수업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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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년 울산대 교육학과 겸임교수의 ‘인간 행동의 이해’ 동영상 수업. 딸이 또래 밀레니얼 세대 수강생의 웃음 포인트를 정확히 찌르는 자막을 달아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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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속은 알aㅏ도(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ㄷr(모른다).' 오탈자가 아니다. 재치 넘치는 예능 프로그램 스타일 자막이 등장한다. '아키'라는 이름의 반려묘가 모니터 옆으로 불쑥 나타나고, 교수라는 직함 대신 '아키 아빠(집사)'라는 작은 자막이 뜬다. 최근 인터넷 달군 왕가년(53) 울산대 교육학과 겸임교수의 '인간 행동의 이해' 동영상 수업 장면이다.

왕 교수의 '보이지 않는 손'은 둘째 딸 왕민(21)씨. 실버 유튜브 스타 박막례 할머니 뒤에 손녀 김유라씨가 있는 것처럼 왕 교수 뒤엔 왕민씨가 있다. 핵심은 같은 또래 밀레니얼 세대 수강생들의 웃음 포인트를 정확히 찌르는 자막과 편집.

왕 교수는 "판서하고 PPT만 했는데 갑자기 동영상 강의를 하라니 막막하더라. 딸이 답답했는지 스마트폰으로 찍어 뚝딱 자기 스타일로 자막 깔고 편집했는데 반응이 좋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 자칭 '왕가네 둘째 딸' 민씨는 "아버지가 기계치(癡)에다 영상 센스가 워낙 없다. 그냥 두면 '폭망'하실 것 같아 돕게 됐다"며 웃었다. 편집 때문에 아버지 강의 내용을 봤는데 너무 재미가 없더란다. 극약 처방이 필요했다. "같은 대학생으로서 '노잼' 인터넷 강의 때 딴짓 하기 바빴던 기억이 있다. 인트로라도 재미있게 만들어서 학생들이 집중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는 요소를 넣었다"고 했다. 부녀가 함께 '싸강(사이버 강의)' 스타가 됐다. 딸의 편집비는 "아빠 강의료 절반"이란다.

송상근 인제대 보건행정학과 겸임교수는 ‘트로트 강의’로 화제 모은 케이스. 동영상 라이브 강의 중간 즉석에서 트로트를 불렀다. 트로트 마니아로서 늘 가지고 다니는 색소폰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타 대학 강의에서 노래방 반주에 맞춰 트로트를 부른 유튜브 영상이 인터넷을 달구자, 인제대 학생들도 요청한 것이었다. 송 교수는 “코로나 때문에 많이 지쳐 있는 학생들을 위로하고 싶어 우연히 불렀는데 반응이 예상보다 뜨거웠다. 결국 교수는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 아닌가”라고 했다.

[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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