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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샷 하나, 대회 한번이 너무 간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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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LPGA 신인 전지원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데뷔한 전지원(23)은 코로나 사태로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자 지난달 초 대구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지역 코로나 확산이 심각하던 때였다. "걱정되긴 했지만 힘든 시기일수록 당연히 가족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건강하시니 감사할 뿐이죠." 전지원은 "기관지가 약해 평소 마스크를 자주 착용해서 그런지 마스크를 쓰고 훈련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요즘은 주로 체력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코스에 나간다.

이번 시즌 한국 국적 LPGA 투어 신인은 2명. 전지원은 풀시드를 따냈다. 후원사 KB금융그룹, 글로벌 매니지먼트사 IMG와 계약했다. 데뷔 후 LPGA 대회 경험은 지난 2월 컷 탈락한 호주 빅오픈이 전부다.

투어 재개를 기다리는 마음은 간절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혹시라도 대회 일정이 바뀌었나 확인해요. 샷 하나, 대회 한 번이 너무 간절해요. 평생 목표였던 무대에 와서 열심히 준비했고 샷 감도 좋았거든요. 보고 싶은 것도, 보여주고 싶은 것도 참 많았는데…."

골프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했다. 중3 때 신설 대회에 연습 삼아 출전했다가 처음 1등을 해봤다. 호주 명문 스포츠 고교 1년 연수 기회가 주어졌다. 고향을 떠나 부모 없이 혼자 외국에서 지내며 공부와 훈련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에선 골프에만 매달리라고 다그치는데 호주에선 아무도 잔소리를 안 했어요. 시간을 쪼개 써야 겨우 훈련할 수 있었어요.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구나' 빨리 깨달았죠."

호주에선 오전 6시에 일어나 체력 훈련을 하고,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을 들었다. 훈련은 방과 후 해가 지기 전까지만 집중했다. '내 기록을 몇 달 안에 깬다'는 목표를 세웠다. 학교 장학금을 2년 더 받으며 우승을 차곡차곡 쌓았다.

고교 졸업과 함께 미국 워싱턴대 골프 장학생으로 선발됐는데, '행정 착오가 있었다'며 입학 취소 통보를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내 일이니 내가 빨리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스치듯 이름을 전해 들은 코치에게 소셜미디어로 '도와줄 수 있느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2년제 데이토나비치대학에 한 자리 남았던 장학생 자리를 따내 입학할 수 있었다. 2017년 미국주니어대학 최우수 선수로 뽑히면서 골프 명문 앨라배마대에 스카우트됐다.

2018년 US여자아마추어 챔피언십은 전지원이 미국 전역에 알려진 계기였다.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심각한 드라이버 난조를 겪어 출전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못 쳐도 된다. 경험만 쌓고 오라"는 부모의 격려에 마음을 비우고 나섰다. 부모는 물론, 캐디도 없이 한동안 혼자 수동 카트를 끌고 다녔다. "늘 혼자서도 충분했기 때문에 굳이 도움받을 필요성을 못 느꼈다"며 "막상 나가니 정말 지기 싫었다"고 했다. 64강부터 연장전 3번, 역전승 4번을 거치며 결승까지 올라 준우승했다. 특기는 벙커샷. 정교한 쇼트게임으로 작은 키를 이겨낸다.

6년 연속 '한국 선수 LPGA 신인상'에 도전하는 전지원은 "대구 벚꽃이 이렇게 예쁘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했다. 10일 대구에선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봄은 기어이 온다.

[최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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