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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생충'과 '날씨의 아이' 반지하방은 이 시대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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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日 애니메이션 감독

'날씨의 아이' '너의 이름은.' 등 대표작들 잇달아 국내서 재개봉

"내 작품 일본 밖서 사랑받는 이유? 개인적이고 로컬한 이야기라서"

"어릴 때 선생님 말씀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여러분, 친구의 처지가 돼서 생각해 봅시다' 말입니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를 만든 신카이 마코토(新海誠·47) 감독은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풀 실마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듣기 싫은 것은 나도 다른 이에게 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양국이 서로에 대해 공감과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할 수 있길 소망한다"고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잇는 일본 차세대 크리에이터 신카이 감독을 인터뷰했다. 코로나 사태가 한·일로 확산되기 전인 지난 1월 말, 도쿄의 제작사 사무실에서였다. 개점휴업인 요즘 국내 극장가에선 그의 작품 재개봉이 '조용한 러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흥행 역대 2·5위인 '너의 이름은.'(2016)과 '날씨의 아이'(2019)가 소규모로 재개봉했다. 22일에는 '언어의 정원'(2013), 다음 달에는 '날씨의 아이'가 더빙판으로 다시 선보인다.

조선일보

일본 도쿄에서 만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그 사람 처지에 공감하고 그 사람 기분을 생각해주는 것, 그것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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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감독은 한·일 관계뿐 아니라 세계에 확산된 양극화, 우경화, 기성체제에 대한 10·20대의 분노를 우려했다. "타인과 다른 생각을 말하면 심하게 공격받는, 조금이라도 다른 일을 하면 무너질 만큼 두드려 맞는 일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면서 "요즘 일본은 한 번의 잘못도 용서받지 못할 것 같은 사회가 돼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기생충' 얘기를 꺼내면서 "국가는 달라도 같은 시대 만들어진 영화라 사회 분위기를 공유한다고 느꼈다"며 "'날씨의 아이'에서도 반지하에 사는 빈궁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기생충'은 아예 반지하에 사는 가족 이야기라 무척 흥미로웠다"고도 했다.

최근작에서 도쿄 풍경을 극사실 묘사한 것에 대해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계기였다"고 했다. 일상이 계속될 것 같았던 느낌이 재난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 지진 뒤에도 태풍·폭우가 거의 매년 일어나 사람들이 죽고 거리가 바뀌는 것을 보면서 '도쿄조차 지금 모습으로 있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졌다. 그는 "지금 기억을 영화에 담아두고 싶은 마음, 어차피 바뀔 것이라면 '날씨의 아이' 엔딩처럼 내 영화에서 먼저 바꿔버리자는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고 했다.

'날씨의 아이'에서 날씨는 미쳐버린 세상, 숨 막힐 것 같은 사회 분위기의 치환이다. 그는 "세계가 미쳐버린다 해도 거기서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젊은이들을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이기도 하죠. '날씨의 아이'에서 소년이 소녀에게 '우린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는 건 '도쿄는 괜찮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너를 아무 일 안 생기게 해 줄게'라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일본 바깥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지극히 개인적이고 로컬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부러 글로벌을 노리는 것보다는 발 딛고 있는 곳을 더 깊이 파는 작품을 만드는 쪽이 결과적으로는 바깥 세상에도 더 잘 전달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신카이 감독은 SF·컴퓨터 오타쿠에서 모라토리엄(성인이 되길 거부하는) 대학생을 거쳐 게임회사를 다녔다. 5년 만에 퇴사, 집에 틀어박혀 만든 1인 창작물이 데뷔작 '별의 목소리'(2002)였다. 그는 "'별의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처음 보였을 때의 경험이 지난 20년간 창작의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50석밖에 안 되는 소극장에서 2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틀었습니다. 졸렬한 작품이었지만 영화를 본 전원이 아주 크게 박수를 보내 줬어요. '내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갔다'는, '나도 인정받을 수 있구나'라는, 제 인생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한 번 더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 지금까지 계속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창작에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하는 일을 누가 필요로 할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계속 일을 해나간다면, 그 길은 잘못되지 않을 겁니다."





[도쿄=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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