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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돌발 상황도 미리 연습하는 개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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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예전에 한 시상식 중계방송을 준비할 때 일이다. 상을 받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상자와 축하공연 등 연예인 출연자가 너무 많아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내로라하는 국내 정상급 가수들이 축하공연을 하는 만큼 세트나 악기, 합창단 등 맞춰봐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았다.

이럴 때 꼭 필요한 것이 '리허설'이다. "유명 연예인들은 리허설 안 하겠지" 넘겨짚을 수 있겠지만, 정상급 실력자일수록 리허설은 더 철저히 한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한 발라드 가수도 오전 소집에 군말 없이 응해, 리허설에 성실하게 임했다. 그는 대략 5분 남짓한 공연을 위해 장장 8시간을 기다리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 리허설만이 성공적인 공연을 보장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개표방송을 준비하는 방송국도 요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개표방송 때는 보통 그 방송국이 가진 가장 최신 기술을 선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이는 처음 구현하는 기술이니만큼 낯설고 오류도 많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반복하는 리허설만이 답이다. 기술팀, 제작진, 앵커 모두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연습 또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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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충분히 리허설할 공간과 시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개표방송처럼 중요한 이벤트는 대부분 그 방송국의 간판 앵커들이 총출동한다. 또 스튜디오도 가장 크고 시설이 좋은 메인 스튜디오가 주 무대가 된다. 하지만 이들은 평소에도 늘 스케줄이 빡빡하고, 스튜디오도 빈 시간이 없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리허설을 허투루 할 수는 없는 법. 일단 기술 리허설은 스튜디오가 잠시 빌 때 끼어들어가 하고, 앵커 동선과 카메라 샷은 체격이 비슷한 제작진이 대역으로 미리 맞춰본다. 그리고 디데이(D-day)가 임박하면 실전 연습을 하는데, 대부분 메인 뉴스가 끝난 야심한 밤에 앵커가 직접 여러 돌발 상황으로 꾸민 시나리오로 리허설을 한다. 임기응변도 미리 연습한 사람이 승자가 되기 때문이다.

결전의 날이 다가올수록 방송국의 불은 꺼질 줄 모른다. 몇 번의 리허설을 거듭해도 부족하고,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개표방송이다. 제작진이 혼신의 노력을 쏟은 만큼 성공적인 개표방송이 되길 응원해본다.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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