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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 통화·외환시장 이모저모

외환시장, 외평기금 감액에 "정부도 환율상승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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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안의 재원 중 일부를 공공자금관리기금의 외국환평형기금 지출을 2조8000억원 줄여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외화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당분간 상승(달러 가치 상승, 원화 가치 하락) 추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점을 기획재정부가 인정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외평기금은 정부가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완화할 목적으로 달러를 살 때 쓰는 일종의 ‘외환시장 비상금’이다. 달러화 자산을 사려는 목적으로 비축하는 외평기금 재원을 줄인다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 하락(달러 가치 하락, 원화 가치 상승)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달러 가치가 내려갈 가능성이 크지 않아 달러를 살 기금을 마련해 둘 필요가 적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올 한해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완전히 종식되기 전에 외평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섣부른 대응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하반기에 금융시장 불안이나 환율 급락 등의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대응 여력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조선비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세계 경기 침체 우려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지난달 23일 서울 명동의 한 환전소에 설치된 환율전광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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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외평기금을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달러를 사 시장을 안정화시킬 필요성이 줄어들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은 2차 추경안 브리핑에서 "외평기금에서 당초 원화 자산(달러를 구입할 돈) 수요가 있을 것으로 봐서 외평기금에 12조원을 반영했지만 최근 환율이 올라 수요가 떨어졌다"고 밝혔다. 향후 환율의 하방 압력이 제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는 게 기재부의 시각이라는 의미다.

기재부의 외평기금 감액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환율 전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코로나로 인해 글로벌 경제 침체가 본격화될 경우 원·달러 환율은 하락(달러 가치 하락, 원화 가치 상승)보다는 상승(달러 가치 상승, 원화 가치 하락) 가능성이 더 높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전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은 외평기금 감액은 시장이 감당할만한 수준이라고 봤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경기가 안 좋고 대외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서 전반적으로 달러의 지지력이 유지될 것"이라면서 "외평기금은 환율 방어용 자금이므로, 올해 안에 많이 활용할 상황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보는 기재부의 인식에 어느정도 동의한다"고 했다.

그는 원·달러 환율이 부침은 있겠지만 올해 안에 급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전 연구원은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커 대외 경기가 안 좋아지면 경기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면서 "올해 환율 고점을 1300원 부근, 하단을 1170원 부근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서정훈 하나은행 외환파생상품영업부 연구위원도 "한미 통화스와프 이후 달러 유동성 부족에 대한 우려가 사그라들었다"면서 "추가 상승 변동성 확대에 대한 우려는 남아있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했을 때 외평기금 자금을 전용하는 것은 현실성 있는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진전이 있거나 확산세가 일시 중단되는 데 따라 환율이 급격히 위아래로 출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은 외평기금 감액이 외환시장 불안정에 대응 여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19의 특성상 사람들이 다 나은 것처럼 보이다 다시 확산세가 폭발하는 식의 양상이 수차례 반복될 것"이라면서 "확산세가 줄었다고 보일 때 환율이 급격히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등 불안정한 상태가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반복될텐데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에 대비하려면 외환당국이 충분한 대응 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외환시장 안정화에 사용할 자금을 다른 곳에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정부가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완화 등을 실시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달러 공급 확대를 위한 규제 완화가 일시적인 달러 유입 쏠림과 이로 인한 환율의 일시적 하락(달러 가치 하락, 원화 가치 상승) 위험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정부가 대응해야하는데, 자금 여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시장에 퍼질 위험도 있다는 것이다.

일시적이라도 환율이 급락(달러 가치 하락, 원화 가치 상승)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 구조 특성 상 기업의 타격이 크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한 원화 강세는 기업의 환율 관련 손실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평기금을 통해 급락하는 환율을 방어할 필요가 있는데, 그 때 가서 ‘정부에 돈이 부족해서 방어를 못 한다’는 인식이 생기면 수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코로나19는 변이가 쉬운 바이러스이고, 한국에서도 재양성 진단을 받은 완치자도 있는 만큼 거시경제에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시장 안정화 조치에 사용할 자금을 다른 곳에 쓰는 결정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이민아 기자(wo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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