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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천태만상 가짜뉴스

"신의 선물" 믿었다 사망···트럼프발 가짜뉴스, 사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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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럽서 코로나 가짜뉴스 경보

커리·소오줌·빨간비누·독주 등등

코로나 예방·치료 도움된다 소문

SNS에 확산하고 상품까지 나와도

이란선 메탄올 마시다 700여 명 숨져

과학적 근거 희박한 황당 주장 불과

트럼프, 클로로퀸 주장에 투자 몰려

보건당국 마스크 권해도 본인은 ‘노’

‘소독제 주사해보라’ 발언 비난 봇물

무게가 실려야 할 대통령의 발언에

근거 없는 주장 들어가면 세계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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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 있는 베를린 장벽 기념 공원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스크를 쓴 벽화가 등장했다. 과거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소련의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동독의 에리히 호네케 총리를 비슷한 포즈로 그린 것을 패러디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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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치료나 예방을 둘러싸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가짜뉴스’나 아직 확인되지 않은 ‘성급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코로나19가 급속도로 번지자 다급한 사람을 노려 허황한 이야기가 더욱 판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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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이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보고를 듣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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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의약기관, 가짜뉴스 경보

오죽 했으면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지난 1일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사기 시험, 백신, 그리고 치료를 조심하라’는 경계령을 발동했을까. 유럽연합(EU)의 의약품 평가기구인 유럽의약품기구(EMA)이 난 3월말 내놓은 보고서는 “코로나19에 도움이 된다고 판매하는 가짜 의약품에는 판매자가 주장하는 효력을 내기는커녕 인체에 해로운 성분을 함유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를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해 복용한 것이 오히려 인체에 해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해를 주지는 않더라고 예방이나 치료 효과를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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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운데)가 지난 29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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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커리·빨간비누·보드카가 코로나 예방 도움?

SNS를 살펴보면 개구충제·비타민C·채식·가글·커리가 코로나19의 예방·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 없는 설이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하지만 한결같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 예로 채식은 채식주의자들이 코로나19에 덜 걸린다는, 커리는 인도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적다는 것을 근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채식이나 커리가 코로나19를 예방한다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다.

가짜뉴스는 믿는 사람을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면서 돈만 낭비하게 할 수 있다. 예로 SNS에선 바이러스 제거 효과가 좋다는 스리랑카산 ‘빨간 비누’가 팔린다. 하지만 어떤 비누를 써도 20초 정도 손 전체를 고루 세척하면 박테리아는 물론 바이러스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 정부와 ‘사회적 거리두기’와 ‘손 씻기’를 코로나19 예방대책으로 강조하겠는가.

바이러스를 사멸한다며 보드카를 권하는 지역도 있는데, 알코올로 손을 세척해 미생물을 제거하려면 농도가 60%는 돼야 하지만 보드카는 40%가 고작이다. 대부분의 증류주가 그 정도 농도이니 소독 효과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소비자의 믿음이 하도 강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이와 관련한 특별 당부를 했을 정도다. 손을 비누로 씻는 것은 60% 알코올이 함유된 손 세정제로 문지르는 것보다 바이러스 제거에 훨씬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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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배설물이 코로나19를 막아준다는 헛소문이 잠시 돌았다. [사진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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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낙타 배설물에 영성 백신까지 등장

트위터에 있지도 않은 호주의대에서 백신을 개발했다며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면 보내준다는 내용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뉴질랜드에선 질병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동종요법 기술을 적용했다며 인플루엔자 혼합액을 인터넷으로 주문받기도 했다. 은이 코로나 예방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소의 소변이나 대변이 바이러스 퇴치에 효험이 있다는 주장이 인도에서, 낙타 오줌이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중동에서 각각 퍼지기도 했다. 돈을 주면 ‘영성 백신’으로 불리는 기도나 축복을 해주겠다는 광고가 인터넷에 나돌기도 했다.

식품 관련 가짜 뉴스도 빠지지 않는다. 따뜻한 물에 탄 레몬이 혈중 비타민C 농도를 높여 코로나19를 예방한다는 가짜 뉴스는 지겨울 정도로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닌다. 양파가 그런 효능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바나나가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주장도 있다. 모두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진짜 효과가 있으면 왜 WHO나 각국 정부가 발표하지 않고 SNS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다 사라졌겠는가.

이란,소독 한다고 메탄올 마시다 700여 명 사망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는 사람들의 목숨을 대량으로 앗아가기도 한다. 이란에선 지난 2월 20일부터 4월 7일 사이에 메탄올 독성으로 728명이 숨졌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이란 국립 검시기관을 인용해 4월 28일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한 해 동안 메탄올 독성으로 사망한 66명보다 10배 이상 많다.

이란 보건부 대변인인 키아누시 자한푸르는 “(같은 기간 동안) 이란에서 5011명이 메탄올을 마셨다가 병원에 실려왔으며 그 독성으로 90명 정도가 실명하거나 시력 손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보건부 장관 보좌관인 호세인 하사니안은 알자지라 방송에 “실제 실명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에선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지금까지 9만 명 이상의 확진자와 58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1차 원인은 이란에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에탄올을 마시면 몸 안의 바이러스를 소독할 수 있다는 가짜 뉴스가 퍼진 때문이다. 거기에 당국은 코로나19 예방용 소독을 위해 에탄올을 시장에 풀었고, 일부에서 이를 술 대용으로 마셨으며, 그 와중에 악덕업자들이 값싼 메탄올을 에탄올이라고 속이고 팔면서 대량 중독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에탄올은 술이나 소독약 제조에 사용된다. 이란은 이슬람 국가로 ‘공식적’으로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 다만 의료용으로는 사용한다. 메탄올은 알코올램프 연료나 화공약품 용제로 쓰이는데 인간이 섭취하면 뇌와 장기 손상을 일으켜 흉통, 구역, 과호흡 등 증상이 나타나며 심하면 실명하거나 혼수상태로 이어져 사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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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미국 워싱턴의 대로 변에 아마존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구호가 적혀 있다. 아마존 노동자를 위한 아마존 그룹의 제프 베저스 회장의 개인 거주지 앞이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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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4월에 바이러스 수습" 희망과 가짜뉴스 중간

그런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매일 같이 여는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에서 수시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발언을 하면서 가짜 뉴스 발원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미국 대통령과 전문 공직자의 엇박자와 정치권의 공방을 넘어 전 세계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럼프의 황당 발언이 나오면서 그전부터 각국에서 돌던 헛소문에 대해 해당 국가에서 ‘비과학적’이라고 지적하고 계몽해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는데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더해 ‘미국의 대통령도 저러는데 누구 말을 믿을 수 있겠나’라는 불신이 더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가짜뉴스 신드롬인 셈이다.

트럼프의 황당 발언을 추적해보자. 트럼프는 2월 10일 지지자 집회에서 “따뜻해지면 바이러스가 사멸한다. 4월까지는 수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듣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거가 희박하고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발언이다. 지도자가 근거가 희박한 말을 하면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해를 불러 대비 태세가 느긋해질 수 있다. 자칫 치명적인 발언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트럼프가 이 발언을 할 당시 기온이 높은 동남아시아와 중동에서도 코로나19가 발생해 기온이 높아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활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미국에서도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4월이 지나도록 사라질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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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 클로로퀴논.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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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 집착, 그릇된 신호

트럼프는 3월 19일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쓸 수 있다고 처음 거론했다. 이는 시작이었다. 트럼프는 그 뒤로 이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CNN에 따르면 그날 트럼프는 “매우 고무적인 결과를 보여줬다”며 “처방전에 의해 거의 즉시 이 약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클로로퀸은 말라리아와 류머티스성 관절염 치료제로 이미 허가 받아 사용되는 클로로퀸 인산염과 화학구조를 재디자인해 부작용을 줄인 하이드록시 클로로퀸 인산염 두 가지 모두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클로로퀸 류인 셈이다.

트럼프는 클로로퀸과 함께 길리어드 사이언스 사의 항바이러스 제인 렘데시비르도 함께 거론하며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이 약들이 승인 절차를 거쳤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렘데시비르는 아직 신약 승인을 받지 않고 임상 시험 중이다. 클로로퀸은 1934년 독일 제약사 바이엘이 개발한 클로로퀸은 미국에선 1947년 말라리아 치료제로 식품의약청(FDA)의 승인을 받았다. 클로로퀸과 개량형인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은 특허가 만료돼 값싸게 이용할 수 있다. 클로로퀸은 부작용이 심각해 말라리아 치료제로는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을 주로 사용한다. 드문 말라리아 치료제라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도 받았다. 말라리아가 유행하는데도 의료 시설과 빈약한 열대 지역 주민을 위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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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명공학 회사 길리어드의 모습. 캘리포니아주 오션사이트에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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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약, 심장독성 등 부작용 많아 위험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은 그 뒤 류머티스성 관절염 등의 효능을 추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치료제로는 승인 받지 못했다. 프랑스와 중국 등에서 시험 사용을 하는 상황인데 효과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아직 코로나19에 대한 효과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설사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고 해도 효력을 나타내는 용량이 말라리아 때보다 높다면 위험할 수 있어서 치료제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에 효과를 보여도 상당수 환자는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의 독성으로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클로로퀸이 효과는 있는지, 어느 정도 용량에서 효과는 내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아직 코로나19 치료약이라고 부를 수 없고 수많은 후보 물질의 하나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23일에는 “클로로퀸과 Z-Pak(항생제인 에리스로마이신)의 결합은 매우 좋아 보이며 신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며 “효과가 있다면 큰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의 선물’‘게임 체인저’ 등의 용어는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온갖 정보가 몰리는 미국의 대통령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 발언이 아닌가.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이를 듣고 클로로퀸이나 그 원료를 제조하는 기업의 주식에 투자했을 것이다.

약물 오남용으로 사망 사례까지

트럼프의 발언은 즉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뉴욕주는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3월 24일부터 시험적 사용을 승인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뉴욕주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 7만정, 지스로맥스 1만정, 클로로퀸 75만정을 각각 확보했다. 중동의 바레인 보건부도 3월 26일 코로나19 화자에게 하이드록시 클로로퀸 투약 시험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다.

문제는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은 독성과 부작용이 강하다는 점이다. 말라리아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용량과 생명을 해칠 수 있는 용량의 차이가 크지 않아 복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심장 독성이 강해 실수로 고용량을 복용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미국 애리조나에선 코로나19를 치료하려고 집 선반에 있던 클로로퀸을 복용한 60대 남성이 숨지고 함께 복용한 부인이 중태에 빠졌다고 CNN외신이 3월 23일 보도했다. 미국 대통령이 전달한 잘못된 정보에 따른 의약품 오남용으로 약화 사고가 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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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중 의료용 면봉 꺼내든 트럼프 대통령.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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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로퀸 부작용에 효과조차 확인 못해

22일에는 2016년부터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의 릭 브라이트 국장이 정치적인 압력으로 전날 물러났다고 CNN이 보도했다. 브라이트 국장은 클로로퀸과 관련한 트럼프의 발언에 의문을 표시했다가 보복조치로 그만두게 됐다고 주장했다. 정치와 과학, 대통령과 전문 관료가 서로 대립하고 각축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결국 미국 FDA가 4월 24일 상황을 정리했다. 코로나19 환자에게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을 투여하는 것과 관련해 “심각한 심장 부작용이 보고됐다”며 의료기관 등에 주의를 촉구한 것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코로나 TF팀의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클로로퀸 투여와 관련해 “(코로나19에) 효력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파우치 박사는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다. 미국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의 낸시 팰로시 의장은 MSNBC에 “위험한 상황”이라며 “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마스크 권유 발표하며 "나는 안 써" 고집

트럼프가 미국민과 세계를 헛갈리게 한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4월 3일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브리핑에서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국민에게 자발적으로 마스크 등 안면 가리개를 쓰도록 하라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권고를 발표하면서 “나는 그것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CDC의 권고에도 자신은 이를 따르지 않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안면 마스크를 쓰고 (외국의) 대통령, 총리, 독재자, 왕, 여왕을 맞이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국민으로선 마스크를 쓰란 말인지, 쓰지 말란 말인지 헛갈릴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소독액 주사 발언으로 전 세계를 혼란에

트럼프가 한 혼란 발언의 결정타는 4월 23일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트럼프는 소독제를 체내에 주사하면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발언했다. CNN에 따르면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토안보부의 빌 브라이언 과학기술국장이 “바이러스가 고온 다습한 환경에 약하고, 소독제와 표백제 등으로 (청소할 경우) 바이러스를 사멸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 것이 계기였다. 이를 들은 트럼프는 “환자들에게 강한 햇빛을 쬐게 하고 소독액을 체내에 주사해 청소하면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 발언은 과학을 넘어 상식에도 어긋나는 황당한 발언이다. 바이러스를 사멸시킬 수 있는 물질은 많다. 예로 바이러스를 키운 배지에 락스를 넣으면 모두 사멸한다. 하지만 그 락스를 인간에게 의약품으로 쓸 수는 없다. 인간이 복용을 한다면 바이러스가 사멸하기 전에 위장관부터 먼저 심각하게 손상되기 때문이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설사 위장관이 손상되지 않는 물질이라도 혈관 안에 있는 바이러스는 사멸시키지 못한다. 온몸의 바이러스를 사멸시키고 인체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효과와 안전이 동시에 확인된 약품을 주사해 써야 한다. 연방기관인 FDA의 핵심 기능이 의약품의 효과와 부작용, 안전을 확인해 사용을 승인하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소독제를 인체에 투입할 경우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소독제를 주사기로 체내에 주입하는 것은 목숨을 버릴 때나 쓰는 끔찍한 방법이다.

햇빛도 마찬가지다. 햇빛을 쬐면 피부에 있는 바이러스에는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체내에 들어간 바이러스에는 영향을 줄 수 없다. 바이러스는 세포막을 뚫고 세포 안으로 들어와 인간의 유전물질을 사용해 증식하며, 증식된 새 바이러스는 세포막을 다시 뚫고 다른 세포가 가서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엄청난 숫자의 바이러스를 만들고 인체의 병을 유발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고열이 나고 호흡이 곤란하고 기침이 나는 환자를 뜨거운 햇빛 아래에 두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럼에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듣고 이날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의 응급 핫라인은 소독제 사용에 대한 질문이 100건 이상 쏟아졌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뉴욕 주에는 30건의 문의가 들어왔다.

대통령 무게에 맞게 과학적으로 검증된 발언을

결국 CDC는 트위터에 ‘살균제를 부적절하게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경고문을 올렸다. 메릴랜드주도 ‘소독액을 체내에 주입하지 말라’는 주의보를 발령했다. 독일의 보건 당국은 “자외선이 오히려 신체의 면역 기능을 억제할 수 있다”며 “어떤 병이든 환자를 뜨거운 태양 아래에 노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몰리는 숱한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게,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자리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이뤄진 보좌진의 조언을 항상 들을 수 있다. 그런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는 무게가 실리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이야기를 검증 없이 충동적으로 거론한 것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건강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지도자가 할 일은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폐해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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