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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내 펀드도 손실인데 왜 라임만 보상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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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손실 선보상 기준 없어 금융사가 알아서 판단
"금감원, 감독부실 잡음 없애려 선보상 압박" 시각도

라임 펀드를 판매한 은행들이 투자자에게 손실액의 일부를 미리 보상하는 방안을 적극 논의 중인 가운데, 최근 금융사들이 책임 소재가 밝혀지지 않은 부실 금융상품에 대한 선보상안을 앞다퉈 내놓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잇따라 발생하는 금융사고를 방치했다간 투자자 이탈이 걷잡을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이 반영된 측면이 있지만, 투자자의 자기투자책임원칙을 훼손해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라임 펀드를 판매한 우리·신한·하나·기업·부산·경남·농협은행 등 7곳은 선보상안 채택 여부를 논의 중이다. 이들이 공동으로 마련한 보상안에는 투자자에게 손실액의 30%를 먼저 보상하고, 펀드 평가액의 75%도 지급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금융사는 라임 펀드를 비롯해 각종 부실 징후가 발생한 금융상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상안을 마련하고 있다.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등이 입증되지 않았고 손실액도 확정되지 않았다며 우선 보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특히 라임 펀드의 경우 판매사들은 범죄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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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준(오른쪽) 라임자산운용 대표가 지난해 10월 환매 중단 간담회에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다. 왼쪽은 최근 구속된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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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펀드, 손실 확정까지 만기 수년 남아 먼저 보상

금융사가 어떤 손실을 먼저 보상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실이 우려되는 모든 금융상품을 선보상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선보상에 대한 기준도 없다"며 "운영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손실이 확정된 상품이 나오면 상품별로 이사회에서 논의해 선보상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규모 손실을 내고 불완전판매 사실까지 입증된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는 선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DLF와 라임펀드의 선보상 여부를 가른 결정적 요인은 '만기'이다. 당시 문제가 된 DLF의 경우 대부분 6개월짜리 상품이라 만기를 앞두고 있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당시 DLF는 조금만 기다리면 만기가 도래하는 상황이었고, 이에 따라 확정된 손실을 바탕으로 금감원 분쟁조정이 가능했다"며 "반면 라임 펀드는 만기가 수년씩 남은 상태인데다, 상환 계획조차 불투명해 투자자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판매사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판매사의 잘못이 입증되지 않았고 손실이 확정되지도 않은 현 상황에서 우선 보상에 나설 경우 투자자의 자기투자책임원칙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금융사에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금감원은 '투자매매업자·투자중개업자 및 그 임직원이 자신의 위법 행위 여부가 불명확한 경우 사적 화해의 수단으로 손실을 보상하는 행위'는 자기투자책임원칙에 반하지 않는 예외 사례라고 금융사에 통보했다.

회수 가능액 산출 여부에 따라 선보상 여부가 갈리기도 한다. 이번에 은행권이 선보상을 추진하는 라임 펀드는 국내 사모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플루토FI’와 전환사채(CB) 등 국내 메자닌이 주요 투자 대상인 ‘테티스 2호’인데, 이 플루토·테티스 펀드에 투자한 CI 무역금융펀드는 선보상 여부가 불투명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라임 펀드(플루토·테티스)의 경우 회계법인 실사를 통해 손실액이 확정됐는데,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아직 실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보상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임자산운용 측 역시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현금화 시기, 금액을 예측하기 어렵고, 금감원과 검찰 조사가 진행중인 관계로 현금화 수립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KB증권은 호주부동산 펀드 투자자들에게 900억원의 투자금 전액을 반환했다. 신한금융투자는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에 대해 투자금 50%를 가지급했고 하나은행은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에 대해 투자금 50% 가지급 또는 손해배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기업은행도 디스커버리 펀드 투자금의 일정 비율을 선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손실액 확정도 중요한 선보상 기준이지만, 금융사 스스로 판단했을 때 판매 과정에서 일부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선보상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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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사태 해결 원하는 감독당국 ‘입김’도 작용

최근 금융권이 라임 펀드 사태 해결에 유독 적극적인 이유는 감독당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라임 펀드 판매사들은 선보상안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라임 펀드의 투자금 회수 등을 전담하는 운용사인 ‘배드뱅크’ 설립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기존 라임 경영진에 자금 회수를 맡기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겉보기엔 판매사들이 전면에 나서 선보상안과 배드뱅크 논의를 주도하고 있지만, 그 뒤에는 금융감독원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DLF 사태에 이어 라임 펀드 사태까지 잇따라 발생하자 금감원의 감독 부실 문제가 불거졌는데, 여기에 금감원 직원까지 라임 사태에 연관돼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금감원 입장에선 최대한 빠르게 사태를 해결하고 싶을 것"이라며 "배드뱅크 설립과 ‘선보상 후정산’ 등 각종 해결책에 대한 보도 모두 금융권이 아닌 당국에서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라임 사태’와 직접적으로 엮여 있다.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금감원 김모 팀장은 지난달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구속됐다. 라임의 '돈줄'로 지목된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직무상 정보 및 편의 제공 대가로 뇌물을 받고 금감원 라임자산운용 검사 관련 내부 정보를 누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팀장은 올해 초 금감원 복귀 이후 정상적 직무수행이 곤란하다고 판단돼 지난달말 보직 해임됐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최근 취임 2주년 간담회에서 KB증권과 하나은행과 등의 펀드 손실 자율배상 조치를 ‘모범 사례’로 거론하며 "자율배상이 이어지고 있고, 그런 사례가 퍼질 수 있었으면 한다.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배상하면 절차가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감원이 나서 강제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윤정 기자(fac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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