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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책으로 단장하기] 건강한 착각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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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이 엄마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내 쪽에서 다시 걸자, 엄마는 얼른 전화를 받아들고서 뜬금없게도 안부를 물어왔다. 평소에 별 시시콜콜한 일로도 자주 전화를 주고받는 터라 구태여 안부를 묻는 게 수상했다.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었더니 간밤에 꾼 꿈이 좋지 않았단다. 나는 별일 없다며 엄마를 안심시킨 뒤 이렇게 덧붙였다.

“원래 엄마 꿈이랑 내 꿈은 늘 개꿈이잖아!”

엄마는 ‘그건 그렇지’라면서도 ‘그래도 조심히 잘 지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간밤에 꾼 꿈이 온종일 눈에 밟힐 때가 있다. 나 또한 자주 그러하다. 꿈이 잦은 나는 하룻밤 사이에 꿈 대여섯 개를 연달아 꾸기도 하고, 같은 내용의 꿈을 몇 번이고 거듭해서 꿀 때도 있다. 잠에서 깨고 난 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꿈이 있으면 인터넷에 해몽도 찾아보곤 한다. 꿈의 빈도와는 별개로, 내 꿈에는 별 예지력이 없다. 현실과는 상관없는 개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골 개꿈으로는 흉몽 중에 흉몽이라는 ‘이 빠지는 꿈’이 있는데, 이런 흉몽을 꾼다고 해서 내 가족 중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이 흉몽을 한 달에 한 번꼴로 자주 꾼다. 그때마다 가족이 해를 입었다면 우리 집은 그야말로 아작이 났을 것이다.)

반면, 나와는 다르게 꿈이 귀신같이 맞아떨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늘 자신의 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불현듯 잠의 한가운데로 스며들어오는 이미지와 상징들을 두고 미래를 가늠해볼 사람들.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늘 흥미롭다. 현실의 무언가를 통해 미래를 점치는 일. 나는 그런 일들에 언제나 구미가 당긴다. 자연과 사물의 존재로 길흉화복을 논하는 풍수지리, 음양오행을 통해 운명을 점치는 사주 명리, 궤를 통해 앞날을 내다보는 주역, 숫자와 패턴의 의미를 살피는 수비학 등 미래를 점치는 모든 행위는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어째서 미래를 점치고자 할까.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점을 보는 사람들의 심리를 ‘통제 욕구’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다.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을 통해, 심리학자 세르주 시코티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연구원들은 인간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주변 환경을 통제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즉, 사람들은 점궤를 통해 미래를 예측함으로써 삶과 운명을 통제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인 외부 환경을 자신이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을 ‘통제의 환상’이라고 일컫는다. 지나친 ‘통제의 환상’에 빠질 경우 외부환경을 이성적으로 지각할 수 없고, 이는 섣부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위험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래를 점치는 행위’는 (책의 제목처럼) 멍청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멍청하고 위험하기만 한 행위일까? 모순적이게도 ‘통제의 환상’은 우리가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연구에 따르면, 자신이 무언가를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착각)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의욕을 불태우는 원료가 된다고 한다. 같은 맥락으로, 우울증을 가진 사람의 경우 통제에 대한 생각(착각)의 빈도가 낮다고 한다.

그 어떤 과학적인 이론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점치는 행위는 내게 여전히 매력적이다. 6월 첫날이 되면 나는 또 ‘이달의 운세’를 검색해 볼 것이다. 운세가 길하면 마음껏 기뻐하고, 흉하면 ‘이번 달은 신중하게 살자’며 마음을 다잡게 되겠지. 앞으로도 나는 맞지 않는 꿈일지언정 해몽을 찾아볼 것이다. 꿈이 나쁘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테고, 좋으면 집에 들어오는 길에 복권 한 장 사들고 들어올 것이다. ‘졸부는 따놓은 당상’이라며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기도 할 테지. 미래를 점치는 일이 비과학적이고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은 잠시 거두고, 착각이 주는 즐거움과 의욕만 골라 즐겨보면 어떨까. 어쩌면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공백 북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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