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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싸게 산 숙박권, 환불 안해줘도 돼"···부킹닷컴 손 들어준 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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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킹닷컴-공정위 '시정 명령 취소' 소송

법원, "중개자인 부킹닷컴은 약관 시정 명령 대상 아냐"

공정위 "예약은 한국어 사이트에서, 취소는 해외 호텔에 개별 요구 하는 어려움은 소비자몫"

부킹닷컴 "투명한 가격과 가격 자율성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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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해외 여행이 대부분 불가능해 졌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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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발이 꽁꽁 묶여버린 요즘. “예약한 해외 숙박권을 취소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된 여행이면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환불이 가능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합니다. ‘환불 불가 숙박권’을 구매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환불 불가 환불 성공 후기 feat.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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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쉽게 검색가능한 해외호텔 온라인 예약 사이트 '환불 불가 옵션' 환불 성공/실패 후기 [인터넷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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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인터넷 블로그 등에는 “환불 불가 숙박 환불 성공/실패 후기” 같은 글이 수십 건 올라옵니다. 부킹닷컴이나 아고다 같은 해외 호텔 예약 사이트를 통해 환불 불가 상품을 예약했는데, 막상 취소하려니 언어도 안 통하는 외국 업체에 직접 연락해 겨우겨우 성공했다는 후기가 대부분입니다. “호텔이 안 받아줘서 어쩔 수가 없어요ㅠㅠ”라는 후기도 종종 보입니다.

비단 요즘만은 아닙니다. 실수로 총 숙박 인원을 잘못 입력해 결제하자마자 취소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에도, 결제 때 고지받은 금액보다 더 많은 요금이 청구된 경우에도 ‘환불 불가 상품’을 구매했다면 취소와 환불은 어렵습니다.



환불 불가 숙박, 뭐길래



‘환불 불가 숙박’은 보통 무료 취소가 가능한 상품보다 가격이 쌉니다. 예약과 동시에 결제하는 상품이죠. 한번 예약이 끝난 뒤 취소하려면 숙박 예정일이 얼마나 남았든지 결제액 전액을 취소 위약금으로 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해외호텔 예약 사이트 중 ‘환불 불가’ 조항이 있는 주요 7개 업체를 찾아냅니다. 그러자 3개 업체가 스스로 환불 불가 조항을 없앴습니다. 공정위는 나머지 4개 업체에 시정 권고를 했고 이 중 2개 업체가 이를 고쳤습니다. 마지막까지 시정 권고를 따르지 않은 ‘부킹닷컴’과 ‘아고다’에 공정위는 시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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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킹닷컴 사이트에서 숙소를 선택할 때 옵션 중 하나로 제공되는 '환불 불가' [부킹닷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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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시정 명령을 한 건 해당 조항 때문에 소비자들이 입는 불이익이 불합리하게 크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환불 불가 조건으로 숙소를 예약했어도 숙박 예정일이 얼마나 남아있는지와 관계없이 단 1원도 되돌려주지 않는 건 소비자에게 과도한 손해배상 의무를 지게 한다는 것이죠.

숙박 예정일이 많이 남아 있다면 일단 고객에게 환불해준 뒤 상품을 다시 팔면 손해가 거의 없는데 왜 그것도 하지 않느냐는 말이죠. 그러자 두 업체는 법원에 “공정위의 시정 명령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法, “플랫폼 부킹닷컴, 시정 명령 대상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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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킹닷컴 사이트에서는 목적지와 여행 기간, 인원수 등을 입력하면 부킹닷컴에 등록된 호텔이나 아파트, 리조트 등 다양한 유형의 숙소를 검색 결과로 제공한다. 이때 '환불 불가'도 조건으로 고를 수 있다. [부킹닷컴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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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이를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부킹닷컴이 낸 소송 결과가 1년여 만에 먼저 나왔습니다.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이창형)는 “공정위가 내린 시정 명령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부킹닷컴의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

먼저 법원은 부킹닷컴이 고객과 숙박 계약을 맺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고객들은 부킹닷컴 홈페이지나 앱을 통해 숙소를 검색하고 환불 불가 조항이 붙은 호텔을 예약(계약)합니다.

하지만 법원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부킹닷컴은 이 예약의 ‘중개자’일 뿐 직접 숙박 계약을 맺는 계약 당사자는 아니라고 본 겁니다. 공정위 시정 명령의 근거는 약관법(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입니다. 약관법은 계약 당사자(이 경우 고객과 숙박업체)를 대상으로 하는데, 부킹닷컴은 예약 플랫폼만 제공하는 중개자이니 이 법에 따른 규제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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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호텔 예약 업체에서 '환불불가' 조건으로 숙박 상품을 사고 취소하고 싶다면 해외의 호텔에 직접 이메일 등을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 취소 허가를 받아야 한다.[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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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정위가 "환불 불가 조항을 없애라" 라고 명령하려면 부킹닷컴 같은 중개 사이트가 아닌 그곳에 올라온 수백개의 해외 호텔에 직접 일일이 명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공정위 관계자는 “해외 소재 호텔이라도 국내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직접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실효성이 있겠느냐”라고 되물었습니다. 부킹닷컴에 소개되는 숙박업체는 228개국 15만개 여행지의 2900만개라고 하네요.

법원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법원은 “국내외 수많은 숙박업체를 공정위가 개별 규제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현실적 필요성이 있지만 이를 달리 볼 수는 없다”고 판결문에 썼습니다. 이 결론이 지금의 법을 충실히 해석한 것이라는 뜻이죠.



‘환불 불가’ 불공정한 약관일까? 法 대답은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한 가지 판단을 더 내놨습니다. “환불 불가 상품을 취소한 고객이 단 1원도 돈을 못 돌려받는 것이 정말 과하게 부당한 불이익을 받는 것인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과한 불이익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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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킹닷컴 앱에서 임의로 숙소와 날짜를 지정한 뒤 같은 조건에서 '무료취소'와 '환불불가' 조건을 달리했을 때 환불불가 옵션이 더 저렴하다. [부킹닷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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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제출된 자료 등에 따르면 환불 불가 상품은 환불 가능 상품보다 평균 10% 정도 저렴하다고 합니다. 고객은 10% 싸게 사서 취소하지 않으면 그 이익을 보지만 계약을 취소하면 숙박대금 100%를 위약금으로 내는 셈입니다.

법원은 “환불 불가 상품을 산 사람들은 일정을 미리 확정해 취소 가능성이 낮은 고객들”이라며 “개인적 사정으로 환불 불가 숙박을 취소한 사람보다 할인을 받아 저렴하게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이 훨씬 많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면서 "손해배상 예정액이 과한지 판단하려면 고객이 얻는 이익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부킹닷컴이 전 세계적으로 환불 불가 조항을 제공하는데, 우리나라만 이를 없애면 오히려 미리 계획을 세워 싸게 여행을 떠나려는 고객들의 선택권을 박탈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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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킹닷컴 사이트의 취소 안내 문구 [부킹닷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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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법원은“고객들이 환불 불가 상품을 구매할 때 4번 정도 ‘취소 시 전액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걸 고지받는다”며 “그런데도 잘 몰라서 이 상품을 구매한 고객들은 민법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에 따라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고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즉 따로 민사 소송을 내서 업체에 일부라도 환불을 요구하라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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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잘 모르고 경솔하게 환불 불가 상품을 구입한 고객들은 민법에 따라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부킹닷컴의 본사는 네덜란드에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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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법조계에서는 민사 소송을 통한 구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부킹닷컴처럼 해외에 본사가 있는 글로벌 업체에는 민사 소장 송달도 어렵다”며 “결국 소비자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없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부킹닷컴은 이번 소송 결과에 대해 "고객들에게 합리적인 가격과 투명한 숙박 예약 경험을 제공하게 돼 기쁘다"며 "숙박 업체들도 가격 정책의 자율성을 계속 보장받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공정위는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며 "약관법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도 찾아볼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비슷한 소송을 진행 중인 '아고다'와 공정위의 소송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또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요.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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