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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정의당 이끄는 33살 장혜영, 9년 전 연세대 자퇴하며 남긴 글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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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백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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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의원 연찬회에 참석한 장혜영 당선인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을 방문해 휴대폰으로 본회의장 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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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이 지난 24일 당의 비전과 노선을 재정비할 혁신위원장에 33세 장혜영 비례대표 당선인을 선택하면서 그가 과거 대학을 자퇴하며 남긴 대자보가 25일 화제가 되고 있다. 장혜영 신임 정의당 혁신위원장은 2011년 일명 'SKY 자퇴 행렬'의 선두에 섰던 주인공이다.

장 위원장은 2011년 11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06학번으로 재학할 당시 명문대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이별 선언문'이라는 대자보를 학교에 내걸고 자퇴를 선언했다.

당시 2010년 3월 자퇴한 고려대 김예슬씨와 2011년 10월 서울대를 자퇴한 유윤종씨 등에 이어 장 위원장이 세번째로 자퇴 행렬에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앞서 자퇴한 두 사람이 학벌 폐지 등의 이유를 앞세운 반면 장 위원장의 자퇴 명분은 좀 더 단순했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대학 졸업장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고 한계 없는 자신을 찾겠다는 선언이었다.

장 위원장은 당시 대자보에서 "학교보다 더 좋은 것을 찾았다. 딱딱한 학벌 폐지론자가 아니라 단지 자유를 더 소중하게 생각할 뿐"이라고 밝혔다.

장 위원장은 "대학에 안갔으면 연세에 안 왔으면 또 그 나름 다른 무언가를 만나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시간 속에 또 다른 느낌들을 가지며 살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어느 날, 교정에서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나 좁아보여 나는 바야흐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장 위원장의 대학 자퇴 이후 삶은 실제로 다양했다. 2018년 정의당 입당 전까지 2년여간 세계 여행을 하는가 하면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버 활동도 했다.

특히 장 위원장은 장애인 동생의 자립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만든 영화 감독으로도 변신하면서 인권운동가 활동도 했다. 이 영화는 17년 동안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한 동생이 시설의 인권침해 논란으로 퇴소해 언니와 살게 되는 일상을 다뤘다.

장 위원장은 동생과의 경험을 통해 혁신위원장 1호 공약으로 '장애인 활동 지원 24시간 보장'을 제안했다.

장 위원장은 앞으로 4·15 총선에서 지역구 1명, 비례 5명 당선이라는 기대 이하 성적을 낸 정의당을 재정비하는 역할을 맡는다. 장 위원장은 전날 혁신위 발족식에서 "혁신이란 어쩌면 정의롭다는 게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코로나19 이후 시대에 진보정당이 가져야 하는 건 뭔지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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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정의당 미래정치특위 위원장이 지난 2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21대 총선 비례대표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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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장 위원장이 2011년 대자보로 남긴 (대학과의) '공개 이별선언문' 전문.

친애하는 학우 여러분, 나는 06년도에 사과대에 입학한 장혜영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 앞에서 공개 이별을 선언합니다. 나의 이별 상대는 여러분도 잘 아는 연세, 우리 학교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진리하고, 또 진리를 자유케 하리라.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자유를 진리함이란 우리는 언제나 자유로웠으며 또한 계속 그러하리라 함을 깨닫는 것이고, 진리를 자유케함이란 스스로 진실이라 믿는 바를 자유로이 펼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 날개의 자유를 깨달은 새들이 하염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새들에게 날개의 자유가 있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에게는 스스로가 믿고 사랑할 것을 선택할 자유, 그렇게 선택한 아름다움을 지켜낼 자유, 즉 `사랑에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야말로 우리가 깨닫고 소중히 여겨야 할 진실에 가장 가까운 무언가가 아닐까요.

문득 생각해봅니다. 만일 연세를 만나지 않았다면, 대학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모든 지점들에 닿을 수 있었을까. 이 느낌들, 생각들을 가질 수 있었을까. 눈 앞의 이 순간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을까.

글쎄요. 아쉽지만 이건 그냥 과장된 강조의 수사입니다. 대학에 안 갔으면, 연세에 안 왔으면 또 그 나름 다른 무언가를 만나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시간 속에 또 다른 느낌들을 가지며 살았겠지요. 우리가 사는 시간은 결코 역행하는 법이 없기에 `만일 내가 그 때 너를 못 만났다면` 같은 가정은 치사한 얘기입니다. 한편 가지 않은 길을 애써 폄하하며 상대적으로 현재를 비교우위에 놓아보려는 시도 역시 참으로 안타깝고 볼품없는 사업입니다.

나는 지금 연세에게 천의 고마움과 천 하나의 아쉬움을 담아 담담히 작별을 고합니다. 고마워, 학교야. 근데 우리 이제 더는 아냐.

감히 말하건대 우리 연애는 연탄재 발로 차도 될 만큼은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교정에서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나 좁아보여 나는 바야흐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연세와 깨진다 하니 주변에서는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다채로운 반응의 구절판을 맛보았습니다. 4년을 다녀놓고 이제 와서 아깝게 무슨 짓이냐. 조금만 참으면 그 또한 다 지나가는 것을. 혹은 네가 배가 불렀구나, 한국 사회에서 고졸로 사는 게 만만해 보이냐. 심지어는 그렇게 해서까지 쿨해보이고 싶냐는 소리까지도 들었습니다.

허나 이 이별에는 아무런 당위도 없습니다. 물론 핑계를 대자면 삼일 밤낮을 주워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마음에 안 들더라, 이런 줄 알았는데 저렇더라, 속았다, 지쳤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변심을 변호하기 위해 한 때의 연인을 깡그리 몹쓸 존재로 전락시키는 이별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떠나는 까닭은 그저 여름이 가을로 변하듯 내 마음이 어느새 학교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마음이 학교를 떠난 이유는 또 다른 긴 사연입니다.

사랑에의 자유, 잎사귀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선배를 둔 우리가 사랑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누가 한 점 부끄럼 없이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까.

나는 이제 연세가 아닌 다른 사랑을 향해 떠납니다.

재미없는 질문을 몇 개 남기고 싶습니다. 학우 여러분은 학교를 사랑합니까? 예비 학우 여러분은 연세와, 아니 대학과 사랑에 빠져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지금 여기 있습니까? 혹시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정말 내일이 오나요?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 네 명의 해맑은 영국 청년들은 이렇게 노래해 주었습니다. `All You Need Is Love(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에요)`. 모두 사랑하고 있습니까?

백지수 기자 100js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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