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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일본에 방역물품 지원했다 뭇매 맞은 경주시 “추가 지원 전면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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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ㆍ우호도시에 방호복ㆍ의료용 안경 지원했다 비난 쏟아져

“시기 부적절 비판 감내할 일…그러나 민간 교류는 이어져야”
한국일보

일본 나카가와 겐 나라시장이 경북 경주시가 보낸 방역물품을 받은 후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서 있다. 경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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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의 자매ㆍ우호도시에 최근 방역물품을 지원, 부정적인 국내 여론으로 뭇매를 맞은 경북 경주시가 25일 결국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추가 지원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시 관계자는 이날 오전 한국일보 통화에서 “일본 내 다른 자매결연도시, 우호도시 등에 예정돼있던 방역물품 추가 지원은 취소했다”면서 “여러모로 시기가 부적절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수긍하고 감내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보낸 것인데 국민 정서가 이 정도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라며 “이로 인해 경주시와 시민 전체가 공격받고 있는 것이 많이 당혹스럽고 가슴 아프다”라고 토로했다.

경주시청 항의 민원 폭주에 국민청원도…불매운동 조짐까지

경주시는 17일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나라시와 교류도시인 교토시에 각기 방호복 1,200묶음과 방호용 안경 1,000개를 보냈다. 또한 자매결연도시인 오바마시 우호도시인 우사시와 닛코시 등 3개 도시에도 각기 방호복 500묶음과 방호용 안경 500개를 추가 지원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유권 문제 등 해묵은 역사 갈등, 지난해 일본 정부의 한국 대상 수출 규제로 불거진 경제 갈등에 더해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면서 일본 내에 일었던 한국 진단키트의 신뢰성,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안전성 논란, 입국금지 조치까지 겹치며 국민 정서는 날이 선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시 홈페이지에는 “전쟁 중에 적국에 물자를 지원한 꼴”, “돈이 있으면 경주시 취약 계층을 돕지 왜 마음대로 일본을 지원하나”, “중앙정부는 신중한데 왜 지자체에서 나서느냐” 등 항의 글이 며칠 동안 3,000건 가량 게재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경주를 방문하지 않겠다는 ‘노 재팬(No Japan), 노 경주(No Gyeongju)’ 선언이 이어졌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경주시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와 이날까지 6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경주시 “우애 쌓아온 도시들…위기 지나면 민간 교류가 역할 할 것”
한국일보

주낙영 경주시장이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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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주낙영 경주시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직접 나서 “상호주의 원칙하에 이뤄진 지원이며 2016년 지진 당시 일본을 비롯한 해외 자매ㆍ우호도시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전쟁 중 적에게도 인도주의적 지원은 하는 법”, “대승적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진정 일본을 이기는 길” 등의 글을 남기며 비난과 공격을 자제해달라 호소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 관계자는 방역물품을 지원하게 된 계기와 관련해 “나라시와는 1970년 한국이 어려울 때 자매결연을 맺어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라며 “국가간 정치적 사안으로 일본과 조용한 날이 없었지만 역사도시라는 공통점으로 지자체 차원에서는 지속적으로 교류해왔고 우애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물품 선정을 두고는 “마스크의 경우 전략 물품이라 시가 갖고 있는 것도 없고 보낼 수도 없지만, 방호복 등 물품은 경주가 원전이 위치한 지역이기 때문에 여분을 많이 비축하고 있었다”라며 “소모품이라 3년 유효기간이 다가와 어차피 교체를 할 시점이었기에 대구에도 5,000묶음, 경산에도 8,000묶음을 보내는 등 당장 필요한 곳에 지원한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경주시에 따르면 나라시는 1998년 태풍 ‘애니’로 피해가 컸던 경주시에 시민 성금 1,290만엔(약 1억3,500여만원)을 전달하고, 같은 해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전세기 2대를 동원해 나라시민방문단을 보내기도 했다. 경주시에 규모 5.8지진이 발생한 2016년에는 나라시건축사회에서 성금 20만6,000엔(약 240만원)을 보냈다.

1976년부터 19년간 157명의 경주 지역 학생에게 나라시 민간단체 ‘시수회’가 총 1,256만엔(약 1억4,35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 역사도 있다. 나라현 소재 치벤학원 또한 1975년부터 일본 문화의 원류는 신라라는 점을 가르치고,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의 뜻을 보이기 위해 45년째 약 21,000명이 경주시로 수학여행을 오고 있다고 한다.

교토시의 경우 세계역사도시연맹의 회장 도시이며, 경주시는 해당 연맹의 이사 도시인 관계다. 교토시와는 양국의 천년 고도를 잇는 크루즈관광 뱃길 연결 사업을 추진하는 중이다. 경주시는 자매도시 간의 우의를 증진,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관광객 유치 활로를 모색하는 차원에서도 이번 방역물품 지원을 결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시 관계자는 “일본에 대한 국민 정서도 (아베) 정권에 대한 분노지 국민이 미운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부터 자매결연을 맺고 많이 도와줬던 도시들인데 이 위기가 끝나면 또 왕래하지 않겠나. 그 밑바탕에는 끈끈한 민간 교류가 간극을 메우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 본다”라고 강조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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