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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정부 전시재정 선언…눈덩이 나랏빚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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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재정이 치료제·백신”

유례없는 재정 확대 드라이브

국가부채비율 50% 육박 전망

추경·세수감소…부채 더 악화 우려

“신용카드 쓰듯 재정 카드 써버리면

외국인 투자 떠나고 기업 어려워져”

30조 넘는 3차추경 6월 처리 요청

중앙일보

문재인


문재인(얼굴) 대통령이 25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전시(戰時) 재정’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전시 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정부의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불을 끌 때도 초기에 충분한 물을 부어야 빠른 진화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재정이 경제위기의 치료제이면서 포스트 코로나 이후 경제체질과 면역을 강화하는 백신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난해 같은 회의에서 한 ‘적극 재정’보다 훨씬 강도 높은 발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나랏돈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고용, 수출 등 실물경제의 위축이 본격화하고 있어 더 과감한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추경의 효과는 속도와 타이밍에 달려 있는 만큼 새 국회에서 3차 추경안이 6월 중 처리될 수 있도록 잘 협조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요청했다. 이미 집행 중인 1차 추경(11조7000억원)과 2차 추경(12조2000억원)은 총 24조원 규모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3차 추경을 대폭 확대하기로 방향을 잡으면서, 40조원 이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유례없는 재정 확대 드라이브다.

문제는 나라 곳간이 버텨낼 수 있을지다. 정부는 낙관적이다. 재정 악화 걱정에 대해 반복되는 정부의 입장은 ‘다른 나라보다 부채 비율이 낮다’다. 이날 문 대통령도 “지금 우리의 국가채무 비율은 2차 추경까지 포함해 41% 수준”이라며 “우리 국가 재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매우 건전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맞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평균은 신흥국 53.2%, 선진국 105.2%다. 한국의 부채 비율은 지난해 40.7%(달러화 기준)로 평균 아래다. 그러나 평균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선진국 통계는 그리스(179.2%), 포르투갈(117.7%) 등 재정 위기를 겪고 있거나 미국(109.0%), 일본(237.4%) 등 기축통화국이어서 부채 비율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나라까지 포함한다. 신흥국 통계도 이미 재정 파탄 상태인 베네수엘라(232.8%), 앙골라(109.8%), 브라질(89.5%) 등이 포함된 수치다.

오히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속도다. 한국의 재정 잠식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IMF 통계에 따르면 2011년 30.3%였던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불과 8년 만인 지난해 40% 선을 넘었다. 올해(46.2%)와 내년(49.2%) 전망은 더 어둡다. 2011년 72개국 중 53번째였던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은 2021년 45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불과 10년 사이 8단계나 악화한 셈이다.

이마저도 12조2000억원 규모 2차 추경, 30조원 이상이 예상되는 3차 추경안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나랏빚 마지노선 무너지는데, 재원마련 방법 없이 ‘수퍼추경’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전시 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정부의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왼쪽 세 번째부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 대통령, 정세균 국무총리.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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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문 대통령의 ‘전시 재정’ 편성 주문으로 내년엔 국가부채 비율 50% 돌파가 유력하다. 게다가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세금 수입) 악화를 감안하면 60% 돌파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올해 법인세 수입은 지난해보다 21.7%나 줄어든 56조5000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GDP 대비 40~50%로 잡았던 한국 국가부채 비율 마지노선은 이제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정부·여당은 재정 위기를 성장으로 극복한다는 복안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심각한 위기 국면에선 충분한 재정 투입을 통해 빨리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여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좀 더 긴 호흡의 재정 투자 선순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길게 볼 때 오히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악화를 막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GDP 총량이 줄어들지 않아야 국가채무 비율도 유리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분자(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큰 폭으로 분모(GDP)를 키워 비율을 낮추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나친 낙관론이라고 지적한다. 정부 지출 이상으로 성장하려면 재정지출승수가 1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재정지출승수는 0.6 내외로 추정된다. 100원 지출하면 GDP를 60원 끌어올리는 효과가 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긴급재난지원금 같은 이전지출은 특히 재정지출승수가 낮은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 상당수가 이런 지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지출을 늘려 GDP를 끌어올린다’는 건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재정은 물가나 실업과도 다르다. 한번 나빠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매년 나가야 하는 필수 지출 비중이 높아서다. 전 세계적인 저금리·저물가 기조가 흔들리면, 빚 부담은 단번에 큰 폭으로 늘어날 수 있다. 빚이 빚을 부르는 눈덩이 효과도 무시 못 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용카드 쓰듯이 재정 카드를 미리 써버리면 외국인 투자가 빠져나가고 기업까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도 “정치적으론 돈을 쓰는 정책이 인기가 있으니 재정 지출을 키우고, 세금을 더 걷는 정책은 인기가 없으니 어떻게든 피하려 한다”며 “다시 닥칠 수 있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젊은 세대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라도 재정 건전성 관리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당·정·청은 코로나 위기 극복 이후에는 경제 회복 추이를 보아가며 중장기적 재정 건전성 관리 노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종=조현숙·임성빈 기자, 윤성민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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