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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1992년 날짜·상황도 또박또박… 할머니 기억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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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 회견]

- 윤미향은 "기억 달라졌다" 했지만…

"92년 6월 25일 위안부피해 신고, 그때 정대협 간사가 윤미향… 모금하는 것 봤는데 부끄러웠다"

76년전 16세 때 끌려갔던 기억… 5년전 한일 위안부합의 상황 등 기자 즉석 질문에 상세히 즉답

25일 오후 2차 기자회견을 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는 말하려는 과거 사건의 시점과 당시 상황,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앞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옛 정대협)의 기부금 유용 의혹을 제기한 이 할머니를 향해 지난 8일 "이 할머니의 기억이 달라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미리 준비한 발언에서는 물론 기자들이 즉석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세세한 내용까지 말했다.

이 할머니는 자신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정대협에 처음 알린 날을 설명했다. 이 할머니는 "해방 이후,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제 삶의 상처를 대중에 공개했던 것이 1992년 6월 25일"이라며 "(정대협에) 신고할 적에 윤미향이는 간사였다. 간사에게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미리 준비한 회견문이 아니라, 회견장에서 기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질문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윤미향씨가 할머니들한테 돈 받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이 할머니는 "(한·일 위안부 합의 후에) 윤병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편지를 써서 화해와 치유의 재단 김태현 이사장이 남자 두 분과 가지고 왔다"며 "그걸 가지고 온 게 1월 29일이더라. 나는 누구에게 (일본 쪽 돈을) 받아라, 받지 말라고 한 적 없다. 내가 안 받으면 된 거고, 나는 전부 반대했다. 그래서 누가 받는지 안 받는지 몰랐다"고 답했다.

이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서 76년 전, 위안부로 끌려갔던 기억도 끄집어 내 상세히 설명했다. 이 할머니는 "우리 나이로 열여섯 살, 만으로 열네 살이다. 그때 성(姓)을 갈지 않으면 배급을 안 줘서 성을 야스하라라고 갈았다"며 "학교는 일본 학교 3~4학년을 다녀 가타카나를 알았다. (일본군 장교가) 야스하라 도시코라고 (이름을) 지어주면서 나도 같은 피해자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일본인들로부터 학대를 당하다가 고통스러워 "엄마"라고 크게 소리친 이후 이명(耳鳴)이 왔고 지금껏 고통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정대협이 그 같은 피해자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준 적 없다는 주장을, 당시 상황 설명과 함께 펴나갔다. 이 할머니는 "정대협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할머니들에게 물어서 밝혀줘야 하는데, 한 번도 할머니를 앉혀가지고 증언 한 번 받은 적이 없다"며 "그냥 모여서 노는데, 밥 먹는 데서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어서 대답한 걸 가지고 (정대협은) 책을 냈다"고 했다. "93년도부터 성북동에 집이 있었다. (거기서) 책을 놓고 6500원에 파는 걸 봤다"고 했다.

또 "정대협 박물관을 서대문형무소에 짓는다고 했다. 그때 박경림씨하고 저희 큰조카 내외간하고 가서 15만원을 받고 정대협에서 증언했다" "윤 당선인이 600만원을 모금해 나를 미국에 데려가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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