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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고용보험이 다시 불지핀 `근로자성`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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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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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특수고용직종사자들의 '단계적' 고용보험 가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제도를 건드리지 않고는 '언발의 오줌누기' 수준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 고용보험은 철저히 임금근로자에 맞춰진 틀이라 높은 수준의 '근로자성'을 만족하는 몇 개의 특고 업종을 제외하곤 작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임금근로자를 억지로 프리랜서로 계약하는 관행을 막는 데도 한계가 있다.

25일 정부에 따르면 고용부는 금년 중 특고의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특고 중에서도 산재보험 적용 대상인 9개 직종 약 77만명이 우선 적용 대상이다. 보험설계사·골프장캐디·학습지교사·레미콘기사·택배기사·퀵서비스기사·대출모집인·신용카드회원모집인·대리운전기사가 이에 속한다. 이들은 고용주와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용역 계약 등을 맺으므로 법률상으로 근로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우선 적용 대상으로 포함된 까닭은 '근로자성'이 강해서다. 즉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는 등 '사용종속성'이 높은 업종이라 실제로는 임금근로자와 다름이 없다. 고용보험상 고용보험 의무가입 범위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이고 실제 제도가 사업장 단위로 돌아가기 때문에 근로자성이 높은 특고가 아니라면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란 불가능하다.

또 이들이 먼저 선택된 이유로 사업주를 특정할 수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9개 업종은 임금근로자들 처럼 근로자와 보험료를 반반씩 부담할 사업주를 특정하기 쉽지만 다른 업종은 그렇지 않다. 2017년 한국노동연구원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근로실태 파악 및 법적 보호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들이 동시에 계약을 맺은 사업체 수는 △택배 기사 1.00개 △보험설계사 1.24개 △대리 기사 1.75개 등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9개 직종 77만명에 대해 내년부터 고용보험을 적용하겠다고 해도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특고들은 수백만명에 달한다. 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30만명이던 특고 종사자는 2018년말 221만명으로 늘었는데 증가 추세가 가파르다. 새로 생기는 업종이 사업주가 명확한 업종일 가능성도 매우 떨어진다. 빠르게 확산하는 플랫폼 경제로 인해 매일 새로운 업종이 생겨나는 마당에 고용부가 매번 고용보험 가입업종을 하나 둘씩 추가하는 건 '언발에 오줌누기'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직장·임의가입을 나누는 것 자체가 근로자성 논쟁을 유발한다"며 "이런 '자격' 조항 때문에 생긴 문제는 근로를 해서 발생하는 소득·매출에 보험료를 메기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해결된다"고 말했다. 즉 보험법 상에 의무가입 자격 기준을 열거할 게 아니라 어떤 식의 근무 형태든 소득이 발생한 곳에 보험료를 징수하는 시스템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국세청이 세금과 보험료를 동시에 징수해야만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고용부도 소득중심 보험체계를 고심하고 있지만 근로복지공단이 국세청에 정보를 넘겨 받아 징수하는 현 체제를 수정하긴 꺼려하는 기류다.

또 지금의 제도로는 '위장 프리랜서'를 방지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위장 프리랜서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고용보험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임금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용역·위탁 계약을 맺는 경우를 말한다. 실질적으로는 회사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하고 정기적인 임금을 받는 근로자인데도 계약 형태만 '사업자'로 돼 있어 4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다. 이 역시 근로자성 문제와 관련된다.

최현수 연구위원은 "위장 프리랜서 문제는 크게 두가지인데, 근로소득이 아닌 사업소득으로 신고하거나 시간제근로자의 시간을 속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며 "전자는 근로자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발생하고 후자는 고용보험법상 적용 제외조항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했다.

즉 사업주가 국세청에 신고를 할 때 근로자를 근로소득자가 아닌 사업소득자로 신고할 유인이 있다는 얘기다. 반면 주 60시간 이하 근로자 사례는 고용보험법과 시행령에서 고용보험법을 적용하지 않게 돼 있어 사업주와 근로자가 입을 맞춰 근로시간을 60시간 이하로 신고하는 경우다. 최 연구위원은 "근로소득이든 사업소득이든 소득에 보험료에 메기면 사업주가 굳이 위장 프리랜서로 신고할 유인이 없다"며 "전속성이라든지 근로자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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