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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봉쇄령 위반에도 뻔뻔한 영국 총리실 '왕수석'...정부 차관, 항의성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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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도미닉 커밍스 영국 총리 수석보좌관.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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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령 위반으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도미닉 커밍스 영국 총리 수석보좌관(48)이 25일(현지시간)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사퇴와 사과를 거부했다.

커밍스는 25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로즈가든에서 최근 봉쇄령 위반과 관련된 논란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지난 23일 가디언과 미러는 커밍스와 그의 아내가 아들과 함께 지난 3월27일 차량을 이용해 런던에서 북동쪽으로 420㎞ 떨어진 더럼으로 이동해 봉쇄령을 위반했으며, 지난 4월12일에는 더럼에서 48㎞ 떨어진 인근 관광지 버나드 캐슬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커밍스가 업무에 복귀한 뒤인 4월19일에도 더럼에 갔다는 보도도 나왔다. 더럼에는 커밍스의 부모와 여자 형제가 살고 있다.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등 야당은 물론, 보수당 내에서도 20여명의 의원들이 커밍스의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커밍스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더럼과 버나드캐슬에 간 사실은 인정했으나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4월19일에도 더럼에 갔다는 보도는 부인했다. 커밍스는 아내와 자신에게 코로나19 증세가 나타나 어린 아들을 돌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더럼에 간 것이라면서 봉쇄령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봉쇄령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집을 떠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커밍스는 봉쇄령을 입안한 정부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자신은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과 관련해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만을 위한 특별한 규정이 있었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커밍스는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데 대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사람들의 분노는 이해할 만하다”면서도 “그러나 많은 분노는 사실이 아닌 언론 보도에 기반한 것”이라면서 언론에 책임을 돌렸다.

런던에 머물렀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러한 견해를 이해한다”면서도 “정중하게 (그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커밍스는 또 4월12일 더럼에서 약 30분 거리인 버나드 캐슬에 간 것은 런던에 돌아가기 전 운전을 할 수 있을 만큼 시력이 회복됐는지 시험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커밍스는 “나는 올바른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사퇴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

여론은 커밍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가디언은 “커밍스는 언론이 부정확한 보도를 했다고 비난하면서도 보도의 핵심과 구체적인 사실은 인정했다”면서 “기자회견을 할 게 아니라 물러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수당에 호의적인 더타임스도 “총리의 수석보좌관이 우리 모두를 바보 취급함으로써 봉쇄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약화시켰다”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

26일에는 더글러스 로스 스코틀랜드 담당 정무차관이 사임한다고 밝혔다. 로스 차관은 가족을 위해 최선의 행동을 했다는 커밍스 보좌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서도 “뉴스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국민은 정부 권고에 대한 커밍스의 이해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보수당 의원 20여명도 커밍스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여론이 악화됐는데도 존슨 총리는 요지부동이다. 존슨 총리는 논란이 불거진 후 “커밍스는 책임감 있고 합법적으로 행동했다”며 두둔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25일 밤 “국민들이 느끼는 혼란과 분노와 고통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커밍스의 사퇴를 거론하진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존슨 총리가 커밍스를 쉽사리 내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커밍스는 최측근이라는 의미에서 비유적으로 총리의 ‘오른팔’로 불리지만, 존슨 정부에서 그의 실제 역할은 ‘수족’이 아니라 ‘두뇌’다. BBC는 “존슨 정부의 정책 아젠다는 커밍스의 아이디어들을 다듬은 것”이라면서 “총리가 유권자의 표심을 읽는 커밍스의 통찰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아예 존슨 총리의 영국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고 싶다면 커밍스의 블로그를 읽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경향신문

데이비드 컴버배치가 주연한 드라마 <브렉시트>


[관련 기사] ‘브렉시트 배후 조종자’로 불리는 사나이

커밍스는 2016년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탈퇴 진영 캠페인을 이끌었다. EU와 이민에 대한 영국인들의 반감을 공략하는 선거 전략으로 탈퇴 진영의 승리를 이끌어내 ‘브렉시트의 배후 조종자’로 불렸다. 커밍스의 이야기는 지난해 TV 드라마로도 방영됐다. <셜록>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배우 데이비드 컴버배치가 커밍스의 역할을 맡았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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