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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장기 불황의 시대 만난 중고 경제, 최첨단 기술력 더해 소비 패러다임 바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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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Interview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모든 분야에서 넘쳐나는 생산과 소비, 너무 빠른 유행 전환은 여전히 쓸모있는 것들의 퇴장을 날마다 강요한다. 중고(中古) 경제는 과잉 시대의 필연적인 결과다. ‘평생 소유’보다 공유와 처분에 능한 실용주의 세대의 등장, 개성 표출 욕구가 강한 개인주의 세대의 등장은 중고 거래 시장을 그 어느 때보다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꿔놨다. 남녀노소 누구나 필요한 물건을 찾아 중고 장터를 헤매고, 기업은 그런 소비자를 위한 사업 모델 구상에 몰두하는 세상이 됐다. ‘이코노미조선’이 업계 추산 20조 원대로 성장한 중고 경제를 집중 분석한 이유다. [편집자 주]

年 20조원 중고 경제 이제 시작
코로나19가 중고 경제 가속화
정보 비대칭 첨단 기술로 넘어야

조선비즈

5월 12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이코노미조선’과 만난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채승우 객원기자



중고 경제의 핵심은 이미 사용했거나 오래된 물건을 시장에 내놓으려는 ‘판매자’와, 새것이 아닌 대신 보다 저렴한 물건을 사려는 ‘구매자’를 잇는 플랫폼이다. 플랫폼이라고 해서 꼭 중고나라나 당근마켓, 번개장터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다. 회원 수 100명인 다음 카페에서도 중고 거래는 일어나고, 아파트 동 주민이 모인 반상회 자리가 중고 장터로 변모할 수도 있다.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있고, 가격과 품질만 맞으면 된다.

역설적으로 기업 입장에서 중고 경제 비즈니스에 뛰어들기 어려운 이유도 시장 본연의 단순성에 있다. 가끔 발생하는 ‘평화로운 중고나라 사태’를 제외하고는 기업 솔루션이 개입할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고 거래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는 바로 가격이다. 가격을 높이는 모든 ‘군더더기’에 소비자는 저항한다. 중개 유통을 통해 수익을 내는 사업 모델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중고나라의 연간 거래액은 3조5000억원에 달하지만, 회사는 손익분기점도 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중고 경제가 가져올 변화를 전망하고, 그 안에서 기업이 창출할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한국유통학회 회장을 지낸 마케팅 권위자,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를 인터뷰했다. 5월 12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서 교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심각한 장기 불황이 예상되는 만큼, 중고 경제의 성장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중고 거래가 내재된 여러 가지 위험성을 어떻게 잘, 그리고 얼마나 싸게 해결해줄 수 있느냐에 따라 중고 경제 기업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했다.

중고 경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커버드 마켓(covered market)이나 토요 마켓 등 오프라인 중고 시장이 곳곳에 깔린 해외와 달리 한국은 그간 중고 거래에 소극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발달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을 기반으로 온라인 중고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오프라인 없이 바로 플랫폼으로 이행한 것이다. 중고 경제 규모는 2018년 약 20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코로나19라는 장기 불황을 만나 성장세가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본다. 중고 경제를 주도하는 세대는 10~20대다. 이들은 소비에 대한 욕구는 크지만, 생애 소득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대다. 정보기술(IT) 기반인 중고 거래 플랫폼 사용에 밝고,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중고 거래가 불가피하기도 하다. 이런 10~20대가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가르치는 것) 방식으로 50~60대 중장년층에 중고 경제를 전파하고 있다. 소유물이 많은 중장년층은 중고 거래를 통해 예상치 않은 소득을 ‘발견’할 수 있어, 유인도 높다. 중고 경제에 적극적인 참여자가 점점 더 많아진다는 얘기다."

중고 경제의 확대에 따라 소비 방식도 변화할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중고 경제는 소비의 패러다임을 180도 뒤집어 놓을 것이다. 새 물건을 마음껏 구매해서 필요 없어지면 내팽개치는 기존 소비 방식은 고도 성장기의 전유물이다. ‘신상품이 아니어도 된다’에서 ‘신상품이 아니어야 한다’로 패러다임이 전환할 것으로 본다. 과거엔 중고 물품은 빈티 나고 초라한 것으로 여겼지만, 경기 불황에 더해 소비로 인한 환경 파괴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는 지금은 달라졌다. 알뜰한 중고 경제가 윤리적이기까지 한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IT 기술 발달로 사회의 많은 부분이 언택트(untact·비대면)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런데 중고 경제에서만큼은 동네 기반의 당근마켓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등, 유독 오프라인의 강세가 거센데.
"중고 거래는 근본적으로 ‘정보 비대칭성’을 내포하고 있다. 새 상품일 때는 품질이 거의 동일하지만, 한 번 손을 타면서 얼마나 썼느냐,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당연히 품질에 따라 가격도 다르게 책정돼야 한다. 잘못된 감가상각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판매자와 직접 만나서 물품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품질 확인 방법이다. 온라인에서 사고 오프라인에서 수령하는 구매 방식을 ‘BOPIS(Buy Online Pickup In Store)’라고 부른다. 기존 유통시장에서는 이미 소비자에게 익숙해진 방식이다. 거래 범위를 반경 6㎞ 내로 좁혀 직거래에 대한 부담을 줄인 당근마켓이 성공한 원인이 여기 있는 것 같다"

기업 측면에선 중고 경제에서 어떤 기회를 발견할 수 있겠나.
"중고 거래 중간상 역할을 하는 스타트업이 이미 많고, 앞으로 활동 영역이 더 넓어질 것 같다. 중고 물품의 품질을 객관적으로 감정·보증하고, 이에 합당한 가격을 책정하는 전문가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롯데백화점 서면점 옆에는 ‘구구스’라는 중고 명품 매장이 있는데, 이곳에선 명품 시계 등의 구매 이력까지 관리한다. 중고 명품의 품질과 진위를 까다롭게 보증하기 때문에 믿고 살 수 있다. SK엔카나 KB차차차와 같은 중고차 거래 플랫폼도 품질 검증에 더해 사후 보증까지 제공하며 소비자가 감수할 위험을 낮췄고,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렇게 세세한 품질 관리는 값어치가 어느 정도 이상인 중고 품목 시장에 제한된다. 기업이 철두철미한 솔루션을 제공하려면 그만큼 높은 ‘중간 마진’을 거둬야 하는데, 소비자 입장에선 구매 가격이 올라가는 문제가 생긴다. 잘못된 거래로 인한 손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면, 그냥 조금이라도 더 싼 P2P(peer to peer·개인 간 거래) 방식을 택할 것이다. 오히려 거래액이 가장 많은 빅 3(중고나라·당근마켓·번개장터)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수익화가 쉽지 않은 이유다."

기존의 유통·제조 기업은 중고 경제의 확대에 어떻게 대처하나.
"안타깝게도 중고 경제에서 활약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오프라인 유통 시장의 전통 강자인 롯데·신세계가 이커머스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처럼, 중고 경제는 신상품 유통과는 결이 전혀 다르다. 중고 거래를 활성화할수록 신상품 소비가 위축된다는 가치 충돌 문제도 있다."

앞으로 중고 경제 비즈니스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하나.
"고가 중고품 시장에서 통용되는 꼼꼼한 품질 관리와 보증, 투명한 가격 책정. 이런 솔루션을 가격대와 품목을 막론하고 모든 중고품 시장으로 확대해나가는 방향으로 발전하리라 본다. 사기·허위 거래를 저지르는 불량 이용자에 대한 모니터링도 소비자 보호를 위해 수반돼야 한다. 가격 상승 문제 때문에 당연히 인력으로는 안 되고, 인공지능(AI) 감정평가사를 개발해 활용해야 한다. 중고 경제 자체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지만, 이를 한 차원 높이기 위해서는 최첨단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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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현 이코노미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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