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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 '부부의 세계' 미술감독 "박해준·한소희 침실, '바람둥이' 뜻하는 그림 배치..알아줬으면"(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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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OSEN=심언경 기자] 2020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 JTBC '부부의 세계'(극본 주현, 연출 모완일)가 지난 16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무려 28.4%. 이는 JTBC 역대 드라마 중 최고 기록임은 물론, 최근 지상파조차 드라마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입이 떡 벌어지고도 남을 수치다.

'부부의 세계'의 성공 요인을 꼽자면, 먼저 배우들의 열연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들의 명연기가 더욱이 빛날 수 있었던 건, 극 중 인물과 꼭 들어맞는 배경이 묵묵히 뒷받침해주고 있었던 덕분이다.

특히 '부부의 세계'에서는 공간의 역할이 중요했다. 한 가정의 불화가 소도시 전체로 번져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인물들의 특성이 착실히 반영된 집과 도시의 효과적인 배치가 전제돼야 했다.

또 '부부의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좀 대단한 사람들인가. 의사, 엔터테인먼트 대표, 회계사, 지역 유지까지, 죄다 그럴듯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는 곧 인물들의 화려한 집 자체가 극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부부의 세계'에 유독 '미술팀이 영혼을 갈았다'라는 평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 이러한 찬사가 누구보다 뿌듯할 사람, 바로 '부부의 세계'의 최기호 미술감독과 OSEN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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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의 세계'가 28.4%라는 기록적인 시청률로 종영됐는데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처음 대본을 받고 너무 재미있게 읽었지만, 과연 이렇게 파격적인 내용을 시청자들이 얼마나 공감대를 가지고 호응해줄지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습니다. 하지만 촬영을 진행하면서 제작진과 배우분들의 뛰어난 역량과 호흡을 느끼고 기우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다 같이 노력해서 만든 결과물을 많은 분이 좋아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시청해주셔서 뿌듯했습니다.

▶ '부부의 세계'에서 '집'이라는 공간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는데요. 개인적으로 지선우의 집에 이들 가족의 변화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났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을 꾸릴 때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으실까요.

지선우의 집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상 분열돼가는 가족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은연중에 느낄 수 있게 디자인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선우가 머무르는 주방과 이태오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거실 사이에는 높이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를 통해서 지선우와 이태오의 지위 차이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또 두 공간 사이에는 구멍이 있는 벽이 있습니다. 이는 둘 사이의 비밀과 의심의 시선을 의도한 것인데, 지선우의 서재에서 벽과 벽 사이에 난 창을 통해 거실을 관찰할 수 있는 구조로도 표현됩니다. 이와 더불어 계단도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강렬한 철재 재질의 사선 구조로 둘 사이의 불안한 관계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하고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계단의 형상이 이 가족의 심리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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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선우의 드레스룸과 여다경의 드레스룸은 지선우 본인도 소름 끼쳐 할 정도로 닮아 있었는데요. 여다경 역시 이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태오와 연을 끊어냅니다. 극적인 느낌을 줘야했던 공간인 만큼 신경을 많이 쓰셨을 것 같습니다.

여다경의 드레스룸은 지선우가 파티에 찾아와 숨어있을 때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한 카메라 앵글 안에 방의 입구 쪽 문과 드레스룸 안쪽이 보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또 선우의 드레스룸과 톤은 다르지만 옷장이나 화장대의 위치와 방향성을 동일하게 둬 자연스러운 기시감을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 가상의 도시 '고산'을 꾸릴 때 어떤 특성을 강조하고자 했을까요. 참고하거나 모티브를 따온 도시가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고산은 지역 커뮤니티가 매우 발달해 있으면서도 폐쇄적인 성격을 많이 지닌 도시로, 과하게 세련되진 않지만 품위 있는 환경을 강조하였습니다. 도시의 외형적인 규모나 밀도는 춘천시를 기준으로 삼고 작업했습니다.

▶ 어디까지가 세트고, 어디까지가 실제 공간이었을까요. 화면상으로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아서 시청자분들도 많이 궁금해하실 듯합니다.

가정사랑병원, 지선우의 집, 고예림 부부의 집, 여다경의 빌라, 과거 태오픽쳐스, 여병규 회장 집 다이닝룸, 지선우와 손제혁의 호텔 방, 이태오와 여다경의 신혼집 등의 내부 공간들이 세트입니다.

▶ 지선우의 집과 고예림 부부의 집은 인접해 있었는데요. 덕분에 두 사람은 창을 통해서 서로의 상황을 곧바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설정에 적합한 세트장을 섭외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섭외 기준과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중산층 가구들이 사는 타운하우스 마을에 지선우의 집과 고예림의 집이 서로 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고 적합한 장소를 찾은 후 캐릭터처럼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두 집을 선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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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주택 지역(평택 험프리스 랜딩)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완성된 현장이라서 제약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태오와 여다경의 신혼집 외부 촬영을 평택 험프리스 랜딩에서 진행했는데, 미군 렌탈하우스다 보니 주택의 양식이나 질감이 한국의 일반적인 집들과는 거리감이 컸습니다. 외부에 맞게 내부 디자인을 할 때 제약이 컸고, 실제로 내부 세트의 분위기와 생활 양식이 너무 서구적이라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시청자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부부의 세계' 세트와 현장을 구성할 때 가장 어렵거나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 있었을까요.

모완일 감독님이 워낙 치밀하게 계산하고 연출을 하는 스타일이라 미술적으로도 배우들의 동선이나 카메라의 앵글 그리고 각종 소품의 인과 관계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도록 하는 것에 많이 신경을 써서 작업하였습니다.

▶ 모완일 감독님과 세트를 꾸리면서 많은 논의를 하신 것 같은데요. 특별히 요청받은 부분도 있었을까요.

첫 미팅에서 모완일 감독님이 지선우의 집은 여성 시청자분들이 '저 집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수 있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 지선우가 여 회장의 집에 가서 여다경의 임신 사실을 폭로하기 전에 2층 복도에서 도자기를 깨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값비싼 도자기처럼 보였는데, 관련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고가였지만 여분의 소품은 준비돼 있었습니다. 그보다 도자기 파편에 다칠 수도 있는 만큼, 연기자의 안전 문제를 더욱더 신경 썼습니다. 여담으로 촬영지의 바닥이 대리석이라 바닥 파손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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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소품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을까요.

지선우의 집 주방 세트에서 첫 촬영에 들어갔을 때 식탁과 아일랜드 위에 과일이 놓여 있었는데, 김희애 선배님이 그 과일로 준영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소품팀이 매번 다른 과일로 세팅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 진짜 신경 썼는데! 시청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좀 덜 주목받아서 아쉽다 싶은 부분이 있을까요.

지선우의 집이 구조적인 장치로 많은 것을 표현하였다면, 이태오와 여다경의 집에는 그림을 이용하여 많은 메타포를 심어 놓았습니다. 부부의 침실 입구에는 바람둥이를 뜻하는 나비 그림을 걸었고, 안쪽엔 웨딩드레스 그림을 배치했습니다. 이는 결혼 생활을 지키고 싶어 하는 여다경과 밖으로 나가려 하는 이태오의 상징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또 침대 위엔 샹들리에 그림을 걸었는데, 샹들리에는 불나방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식당과 준영이 방, 부부 침실, 아기방에는 정면을 응시하는 동물 그림들을 걸었는데, 이는 새롭게 가정을 꾸렸지만 여전히 주변 시선과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상황을 시선이라는 요소로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태오 방의 얼굴 없는 남자들 그림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사는 극 중 인물들을 의미합니다.

▶ 반대로 '부부의 세계'를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연락을 못 하고 지내던 지인들에게서 많은 응원을 받았습니다.

▶ 7개월간 대장정이 끝났습니다. 무사히 마친 소감으로 인터뷰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 호흡이 제대로 맞는 사람들과 즐거운 작업을 했고, 그 결과가 너무 좋아서 만족스럽습니다. ‘부부의 세계’가 표면적으로 자극적이고 이질적인 면도 있지만, 많은 분이 사랑해 주신 이유 중 하나는 결과적으로 담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도 당연한 ‘가족의 소중함’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JTBC '부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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