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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영화선 악당, 현실선 1만명 구한 코로나 희망버스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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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 우상된 배우 소누 수드

봉쇄령에 교통편 못구한 노동자들

수백㎞ 걸어 고향 가다 희생자 속출

사재 털어 수백 대 버스로 실어날라

매일 4만5000명에게 무료급식도

중앙일보

발리우드 스타 소누 수드(오른쪽)는 버스 수 백대를 빌려 코로나 봉쇄로 발이 묶인 노동자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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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발리우드 배우 소누 수드(46)가 13억 인도인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25일 BBC는 인도에 부는 소누 수드 열풍을 전하며, 수드 덕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봉쇄로 발이 묶인 1만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영화 속에서 그의 역할은 주로 악당. 흥행 수익 2억5000만 달러를 올리며 중국 역대 박스오피스 5위를 기록한 ‘쿵푸 요가’(2017)에서도 고고학 교수‘잭’(청룽 분)의 보물을 빼앗는 악당 두목 ‘랜달’로 나온다. 영화 속 악당이 현실의 영웅으로 등장한 ‘반전’ 스토리에 대중이 열광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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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선행을 감사하는 팬들의 그림. ’이 그림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적혀 있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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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코로나19확산에 전면 봉쇄령을 내린 건 지난 3월 24일이다. 갑작스러운 이동 제한에 외지에서 일하던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도 잃고, 교통편 단절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난민 아닌 난민이 됐다. 이들은 결국 고향에 가기 위해 무작정 걷기를 택했고, 수천 명이 1000㎞나 떨어진 고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언론에 잡히기도 했다. 희생자도 속출했다. BBC는 “100명 이상이 이동 중 완전히 탈진해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인도 정부가 특별열차 편성에 나섰지만, 이들을 모두 실어나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보다 앞서 3월부터 소누 수드는 소꿉친구인 니티 고엘과 함께 ‘코로나 봉쇄’에 고립된 사람들에 음식을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엔 식료품 봉지 500개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4만5000명에게 매일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음식 나눔으로 시작된 봉사가 수백 대의 ‘희망 버스’로 이어진 건 지난 11일부터다. 소누 수드는 20여년간 배우로 활약하며 모은 사재를 털었다.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백㎞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그는 첫 버스가 출발하기 전, 여행길이 순탄하길 바라며 코코넛을 도로에 내리치는 전통 의식을 열기도 했다.

이후 지금까지 그의 도움으로 1만2000명이 무사히 고향에 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가족들과 찍은 사진을 올리는 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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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쿵푸 요가’에 출연한 소누 수드(왼쪽)와 청룽.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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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의 트위터에는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이들의 요청이 쇄도한다. 그는 인도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한 사람이 집에 돌아갈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의 선행에 감동한 인도인들은 그를 칭송하는 패러디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 SNS엔 그가 슈퍼맨이 돼 버스를 힘껏 밀고 있는 이미지도 퍼지고 있다. “이 한장의 그림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말도 붙었다.

딸을 납치한 유괴범을 아버지가 혼내주는 영화, ‘테이큰’을 패러디한 것도 있다. 주인공(리엄 니슨 분)이 “네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너를 찾아서 죽이겠다”는 복수의 대사는 “네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난 너를 찾아서 집에 돌려보내 주겠어”라는 훈훈한 대사로 패러디됐다. “아들이 집을 나갔나요? 소누 수드한테 물어보면 찾아서 집에 돌려 보내줄 거예요”라는 글도 있다.

그의 영어 이름(SOOD)에 들어가는 알파벳 ‘OO’도 어느덧 자동차 바퀴로 바뀌었다. 소누 수드는 지난달 9일엔 뭄바이에 있는 자신 소유의 숙박시설을 “코로나 격무에 지친 의료진들이 쉬는 데 쓰라”면서 통째로 내주기도했다. BBC는 “코로나19 재난 속 수많은 극빈층이 방치된 상황에서 그의 선행이 많은 이들을 감동하게 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인도 현지에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대국민 연설에서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상황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란 반응도 나왔다. 온라인상에는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을 그가 대신 하고 있다”는 언급도 나온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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