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美 친 남자' 유희관 "느리다고 놀리면 큰 코 다쳐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ESPN 화제, 중계마다 호투

잠실=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노컷뉴스

두산 좌완 유희관이 27일 SK와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잠실=연합뉴스)


'느림의 미학' 유희관(34)이 야구 본토 미국을 사로잡고 있다. 특유의 낮은 구속으로도 충분히 승리 투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유희관은 2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 리그 SK와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1실점 쾌투를 펼쳤다. 팀이 4 대 2로 이기면서 유희관은 시즌 2승째(1패)를 따냈다.

이날 경기는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도 생중계했다. ESPN은 메이저리그(MLB)가 코로나19로 중단되면서 KBO 리그를 중계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등 130개 국각에 KBO 리그 경기를 내보내고 있다.

공교롭게도 유희관은 ESPN이 중계하는 경기마다 등판했다. 지난 15일 KIA전, 지난 21일 NC전까지 유희관의 등판 경기를 ESPN이 중계했다. 첫 경기 5이닝 2실점 승리를 거둔 유희관은 NC전에서는 6이닝 2실점 호투했지만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다 27일 경기에서 7이닝, 올 시즌 최장 이닝을 소화하며 승리까지 따냈다.

사실 유희관은 구속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절묘한 제구와 날카로운 변화구, 여기에 허를 찌르는 느린 '속구'로 상대 타이밍을 뺏는다. 속구는 시속 130km 내외다. 이날도 최고 구속이 131km에 머물렀다. 이른바 배팅 볼 수준이다.

하지만 유희관은 절묘한 제구로 이를 만회한다. 또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커브 등을 적절하게 사용해 구속의 불리함을 극복한다. 변화구가 들어올 줄 알고 기다렸던 타자들은 허를 찌르는 속구에 당하기 일쑤다. 그럴 때 유희관의 속구는 시속 150km 못지 않은 위력을 지닌다. 이른바 느림의 미학이다.

노컷뉴스

유희관은 친숙한 외모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도 인기가 높다. 그러나 사람 좋은 미소와 느린 구속 뒤에는 강한 구위가 숨겨져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렇게 유희관은 KBO 리그에서 살아남았다. 2009년 두산에 입단한 유희관은 이듬해까지 승리가 없었다. 그러나 상무 제대 뒤 2013년 10승 7패 1세이브 3홀드로 활약한 뒤 2014년부터 풀타임 선발로 자리잡았다. 지난해까지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올렸다.

유희관의 느린 공은 오히려 타자들을 현혹시킨다. 강속구가 눈에 익은 타자들은 유희관의 낯선 공에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커브는 시속 86km까지 구속을 떨어뜨릴 수 있다. ESPN 중계를 통해 유희관의 공을 접한 미국 팬들은 신기하다며 열광하고 있다. 시속 170km에 육박하는 메이저리거들의 공에 익숙한 미국 팬들로서는 당연하다.

이를 유희관도 알고 있다. 이날 경기 후 유희관은 "그동안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해 해외 팬들에게 나를 알릴 기회가 없다가 ESPN을 통해 전 세계에 중계가 되고 있다"면서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오늘 80km대 커브를 던지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러나 경기가 빡빡하게 진행되면서 던질 기회가 오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자신의 투구가 일회성 화제로 여겨지는 데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느리지만 강한 자신만의 야구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유희관은 "이른바 '빠던'(홈런 뒤 방망이 던지기 세리머니) 등 너무 흥미 위주로 KBO 리그가 미국에 소개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러나 KBO 리그도 메이저리그와 다른 나름의 매력이 있고, 내 공도 느리지만 승리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희관은 "올해 8년 연속 10승이 걸려 있고, 통산 100승에도 11승이 남았다"면서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면 이룰 수 있다고 본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느리지만 강한 남자, 유희관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