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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반값에 팔아라" 박원순식 공원 만들기에 속앓는 대한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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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대한항공(003490)의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당초 이 부지를 매각해 자본을 확충하려 했던 대한항공은 비상이 걸렸다. 대한항공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송현동 부지를 최소 5000억원에 매각하는 내용의 자구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공원 조성 발표로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9일 재계와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27일 열린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 북촌 지구단위계획 내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결정안 자문을 상정했다. 서울시는 "많은 시민과 함께 충분히 논의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자문 의견을 반영해 6월 중 열람공고 등 관련 절차를 추진한 뒤 올해 안에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지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직격탄을 맞은 대한항공의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1조2000억원 규모의 지원을 받으며 내년 말까지 2조원 가량의 자본 확충을 요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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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작년 7월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효창독립 100년 공원 조성 업무협약식에 참석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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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비롯해 송현동 부지와 왕산레저개발 지분, 파라다이스호텔 부지 등 자산 매각에 나섰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공원 조성 계획에 따라 서울시가 이곳을 매입해 문화공원으로 만들면 대한항공은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된다.

대한항공은 송현동을 비롯한 유휴자산 매각을 위해 지난달 삼정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을 그룹 유휴자산 매각 주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매수 의향자 조사와 자산 가치 평가 등의 작업을 진행해왔다.

송현동 부지는 20년 가까이 방치됐다. 지난 1997년 삼성생명이 국방부로부터 1400억원에 사들인 뒤 미술관을 지으려다 포기하고 2008년 대한항공이 2900억원에 매수했다. 대한항공은 이곳에 호텔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를 지을 계획이었지만 학습권 침해 등 관련법에 가로막혀 무산됐다.

이 땅의 현 가치는 5000억~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서울시는 매입가를 2000억원 미만으로 책정하고 있다. 매입 대금 지급도 거래 시점이 아닌 자체 감정 평가와 예산 확보 등을 거쳐 최소 2년 후를 예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실효성 있는 조기 매각을 위해 매각 대상을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속내는 다르다. 자본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라 난감하다는 반응이 흘러나오고 있다.

앞서 진희선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대한항공이 이 땅을 제3자에게 팔 경우 이를 재매입해서라도 공원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에도 대한항공에 "민간 매각시 발생하는 개발 요구를 용인할 의사가 없다"며 공매 절차를 중단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가 각종 인허가권을 쥔 만큼 이 같은 요청은 사실상 제3자가 매입하면 개발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으름장과 다름없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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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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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은 당시에도 유휴자산 매각은 이사회 의결 절차가 필요한 사안으로, 적정 가격을 받지 못할 경우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는 입장을 서울시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계획대로 송현동 부지를 도시계획 시설상 문화공원으로 지정하면 민간이 이 땅을 매입해도 다른 개발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진다. 서울시가 이 부지를 공원으로 지정한 것 또한 땅값을 미리 낮추기 위한 ‘밑 작업’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부지 매입 의사를 타진했던 일부 기업도 서울시의 완고한 입장에 입찰 참여 계획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유지를 시에서 일방적으로 공원을 만들겠다고 밀어붙이는 상황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비상식적"이라며 "코로나19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업을 억압하는 것은 추후 시장에도 나쁜 사인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 요구는 법적으로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부동산 전문 김예림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에 따르면 공원 조성은 공익 사업에 해당한다"며 "이에 따라 서울시가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를 사업 구역으로 지정해 수용 절차를 밟으면 법적으로는 막을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원 조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중구 중림동 송기정체육공원 재조성을 마쳤고, 효창공원을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바꾸는 방안과 광화문 광장 공원화도 추진하고 있다. 용산부지에 아파트를 짓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용산 부지는 녹지 중심 공원으로 만들자는 것이 국민 공감대"라며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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