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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조영남 최후진술 "화투 갖고 놀면 패가망신···너무 놀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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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영남씨가 '대작' 의혹에 휩싸인 '극동에서 온 꽃' [대법원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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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애환이 깃든 ‘화투’를 꽃으로 표현하고 극동 지역, 즉 대한민국에서 왔다는 뜻을 담은 ‘극동에서 온 꽃’이라는 그림입니다”

28일 오후 대법원 대법정 스크린에 띄워진 가수 조영남(75)씨의 그림. 조씨는 4명의 대법관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는 법을 설명했다. 그림을 '잘 그렸는지 아닌지'가 아닌 그림마다 달린 제목을 봐달라고 호소하며 말이다.

조씨가 “내 그림”이라며 소개한 이 그림은 높은 가격에 팔렸다. 그런데 이 그림의 90% 이상이 다른 사람(조수)이 그린 거라면 이 그림 판매는 ‘사기죄’에 해당할까.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가 소부로서는 처음으로 연 공개 변론에서 ▶조씨가 그림을 팔 때 조수가 그렸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대부분이 조수가 그린 그림은 ‘대작’으로 봐야 하는지 등을 다퉜다.



어떤 법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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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 대법관(왼쪽 두 번째)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조영남 그림대작 사건' 공개변론에 참석하고 있다.〈br〉〈br〉이날 대법원은 가수 조영남이 대작(代作)인 것을 알리지 않고 다른사람에게 그림을 판매한 것이 사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판단을 내리기 위해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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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조씨가 ‘조수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그림 구매자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은 점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알리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이 ‘이건 조영남이 그린 그림’이라는 착오에 빠지게 했고, 비싼 금액의 그림 구매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반면 조씨측은 사기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씨에게 ‘누가 얼마만큼 그림을 그렸다’라는 점을 명확하게 고지할 의무가 없고, 구매자들이 이를 알고 샀는지 모르고 샀는지도 불분명하다는 주장이다. 구매자 중 일부는 조씨에게 조수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있었다. 대작 의혹이 불거진 이후 그림을 환불해달라는 요청은 한 건도 없었다는 근거도 댔다. 조씨측은 이런 점을 근거로 "수사 관행에서 이어진 검찰 재량권 남용"이란 비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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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가수 조영남 그림대작 사건 공개변론에 관련 그림작품이 들어가고 있다.〈br〉〈br〉이날 대법원은 가수 조영남이 대작(代作)인 것을 알리지 않고 다른사람에게 그림을 판매한 것이 사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판단을 내리기 위해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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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 사건은 사기죄로 기소됐지만 사기의 ‘피해자’라고 조씨를 고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2016년 한 무명화가가 “가수 조영남이 그린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라고 폭로하며 이후 검찰 수사로 이어져 지금까지 재판 중이다. 2017년 1심은 조씨의 고지 의무를 인정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명했다. 반면 2심은 “조수들은 보조자에 불과하고, 구매자들에게 조영남이 직접 그렸는지를 알리는 게 필요하지 않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내 아이디어로 90% 조수가 그린 그림, 누가 작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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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변론에서 질문하고 있는 김선수 대법관 [대법원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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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네 명의 대법관 중 김선수 대법관은 검찰측 참고인(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장)과 변호인측 참고인(표미선 전 한국화랑협회장), 검찰에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신 위원장이 “(조씨 같은)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아이디어를 주고 조수처럼 부려먹었다”며 “아이디어는 이를 그려내는 작가적 역량이 반드시 함께해야 작품으로 인정되지, 일부 손만 보는 것은 수치스러운 사기 행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김 대법관은 신 위원장에게 “프로와 아마추어의 명확한 구분 선이 있는지” “일반인 눈에서는 프로의 그림보다 아마추어 그림에 돈을 더 낼 수도 있지 않냐”고 물었다.

또 김 대법관은 검찰에 “만약 화가가 작품에 조수를 사용했냐 여부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된다면, 어디까지가 적법한 조수 사용이고 어떤 선을 넘으면 위법한 대작이냐”며 기준이 있는지 물었다. 검찰은 “대법원에서 잘 가려달라”고 답했다.



조씨, “화투 갖고 놀면 패가망신, 너무 오래 놀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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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공개변론 [대법원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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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점퍼와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법정을 찾은 조씨는 일어서서 최후 변론을 했다. 조씨는 “현대 미술은 100% 자유와 창의력 게임으로 몽땅 바뀌었다”며 자신의 아이디어로 조수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시킨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조씨는 지난 5년간을 회고하며 "사회에 보탬이 되는 참된 예술가가 되도록 살펴 주시길 청한다"고 말했다. 울먹이며 말을 이어가던 그는 자조 섞인 말도 덧붙였다. 조씨는 “예로부터 화투 갖고 놀면 패가망신한다 했는데 제가 너무 오랫동안 화투를 갖고 놀았나 보다”라며 “대법관님들이 저의 결백을 가려달라”고 변론을 마쳤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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