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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고양 물류센터 직원, PC방 흡연실서 부천 직원 만나 감염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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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재확산 비상]일면식 없었는데 우연히 마주쳐

고양시, 동시 근무 직원 진단검사… “택배물품 통한 전파 가능성 낮아”

부천센터, 코로나 수칙 안지켜… 단기직원 “아파서 결근땐 페널티”

쿠팡 물류센터 전국에 168개… 단기고용 많아 감염 추적 어려워

쿠팡측 “심려 끼쳐드려 송구”

동아일보

부천보건소 앞 검사 행렬 28일 오후 경기 부천시보건소 선별진료소 앞에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 지어 섰다.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한 뒤 검사를 받으려 선별진료소를 찾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부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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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시 쿠팡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집단 감염이 한강을 건너 약 22km 떨어진 경기 고양시 쿠팡 물류센터로 번진 건 확률 ‘0%’에 가까운 우연이었다. 같은 쿠팡 소속이지만 다른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며 일면식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 직원 2명이 인천 부평구에 있는 PC방 흡연실에서 마주쳐 감염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집단 감염을 들여다보면 이 역시 ‘인재(人災)’임을 알 수 있다. △이태원 클럽 방문 사실을 숨겼던 인천 학원 강사에서 시작해 △마스크를 벗고 밀접 접촉하는 코인노래방과 PC방 등이 매개가 됐으며 △방역체계가 허술한 근무 현장에서 아파도 쉬지 못하며 열악한 조건을 감내해야 했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주로 감염됐기 때문이다.

○ 부천-고양 직원, 같은 PC방 이용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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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재난안전본부 등에 따르면 쿠팡 부천 물류센터 관련 코로나19 확진자는 28일 오후 11시 기준 모두 96명. 지역별로는 인천이 39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38명)와 서울(19명)도 계속해서 늘어났다.

쿠팡 고양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직원 A 씨(28)는 부천 물류센터 직원 B 씨(19)와 접촉한 뒤 확진 판정을 받았다. 27일 확진된 A 씨는 25일 호흡기 증상을 보이기 전인 24일 인천 부평구 삼산동의 한 PC방을 방문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26일 확진된 B 씨가 같은 PC방을 21∼24일 총 4차례 이용했다. 방역당국은 A 씨가 이 PC방 흡연실 등에서 B 씨가 남긴 바이러스를 흡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고양시는 A 씨가 고양 물류센터에 출근했을 때 근무한 직원 711명을 대상으로 검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부천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다 확진된 직원의 딸인 여중생(13)도 27일 확진됐다. 27일 확진 판정을 받은 이곳 직원의 80대 아버지와 90대 어머니도 28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 방역지침 지키지 않은 물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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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물류센터 직원 A 씨와 PC방에서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B 씨는 부천 물류센터에서 단기직원으로 근무해 왔다고 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부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3760명 가운데 정규직은 98명으로 2.6%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계약직과 아르바이트 등이다. 돌잔치 참석차 부천의 뷔페에 다녀온 뒤 확진된 부천 물류센터의 첫 확진자도 단기직원이었다.

이 센터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불이익을 우려해 ‘아프면 쉰다’는 방역수칙을 지키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단기직원인 김모 씨(21·여)는 “근무 전날 오후 10시에 일정이 정해지면 어떤 이유든 출근을 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받는다”고 했다. 물류센터 공식 블로그에도 ‘(근무) 확정 문자메시지가 발송된 뒤 출근을 취소하면 페널티가 발생한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다. 또 신선식품을 주로 취급한 이 센터의 특성상 영하 20도 안팎의 냉동고에서 근무해 발열이나 기침 등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고양 물류센터 직원들에 따르면 이곳도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22, 23일 고양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이모 씨는 “7층 구내식당에서 밥을 알아서 퍼먹는데 주걱 하나로 돌려썼다”고 했다. 이 센터 구내식당은 27일부터 일회용 장갑을 사용했다고 한다.

방역당국은 환경검체 분석 결과 부천 물류센터에서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았을 정황을 발견했다. 물류센터 직원들이 착용했던 모자나 신발 등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최근 기온이 오르고 습도가 높아져 바이러스가 체외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임을 감안하면, 환경 검체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건 상당한 양의 바이러스가 작업장에 퍼져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28일 브리핑에서 “충분한 거리 두기와 생활방역 수칙이 이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권 부본부장은 “택배 물품을 통한 코로나19 전파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 직원끼리 거리 두기 쉽지 않은 작업 환경

쿠팡의 전국 물류센터는 지난해 말 기준 168곳이다. 부천과 고양 외에도 인천과 대구, 경기 이천, 화성 등 20여 곳에 대형 물류센터가 있다. 유통업계에선 쿠팡의 대형 물류센터가 상품 분류부터 포장까지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는 등 자동화 수준이 낮아 직원끼리 거리를 두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 고용 인력이 많아 잠재 위험을 예방하기 어렵고,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우려도 있다. 대형 물류센터에서 중소형 물류센터로 옮겨온 물건을 각 가정으로 배송하는 데 단기 아르바이트인 ‘쿠팡플렉스’ 직원들이 가담한다. 쿠팡플렉스는 특별한 자격 없이 자동차로 배송 가능한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근무 시간 및 기간이나 배송 지역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현재 쿠팡플렉스 등록자는 10만 명이 넘었고, 하루 평균 5000명의 쿠팡플렉스 인력이 활동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일용직 근로자가 많을수록 감염 경로를 일일이 추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쿠팡 관계자는 “쿠팡플렉스가 물건을 찾아가는 중소형 물류센터는 1일 1회 방역하고 있는 만큼 감염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쿠팡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어려운 시기에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하다”고 밝혔다.

김태언 beborn@donga.com·신희철 / 인천=박희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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