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문 닫은 공장들 속속 경매로…가격 낮춰도 사는 사람이 없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추락하는 제조업 ◆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경기도 광주시 소재 마스크팩 원자재를 납품하는 A사 공장 용지(470㎡)가 경매에 나왔다. A사는 연매출이 수백억 원 규모로 작지만 대기업에 중간재 등을 납품하며 제법 탄탄한 성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수출길이 막히고 인건비·설비비 등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사업을 포기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출길이 줄줄이 막히고 국내 소비마저 곤두박질치자 대한민국 경제의 뿌리인 중소 제조업 공장들은 줄줄이 경매로 내몰리고 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제조업 평균가동률(68.6%)은 2009년 2월(66.8%) 이후 가장 낮다. 공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만큼도 굴러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수년간 최저임금 상승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으로 비용 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일감이나 주문량이 줄어들자 결국 부채 부담을 견디지 못해 사업을 접고 있다.

29일 법원경매 정보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전국 공업시설 및 공장용지에 대한 지난 4월 경매진행건수는 464건, 그중 낙찰건수는 128건으로 집계됐다. 경매진행은 2019년(427건)에 비해 8.6% 증가한 반면, 낙찰건수는 7.2% 감소했다. 경매진행건수 대비 낙찰건수 비율인 낙찰률은 27.6%다. 4월 공장 낙찰률이 30% 이하로 떨어진 것은 지난 10년 내 없었던 일이다. 지지옥션 관계자는 "쉽게 말해 공장 등 생산 현장을 둔 사업이 부채를 감당하기 힘들어 망하거나 운영이 힘들어져 나오는 공장 땅과 시설은 늘어난 반면, 저렴한 가격에 경매에 나와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공장 매물이 쏟아질 정도로 싸늘하게 식어가는 제조업 경기는 남아도는 전력량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29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28일 전력공급 예비율은 평균 53.9%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달 평균인 30.9%와 비교해 2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전력공급 예비율은 전력설비 공급 용량과 최대 전력의 차이인 공급예비력을 최대 전력으로 나눠 백분율로 표시한 값으로, 숫자가 클수록 그만큼 많은 전기가 남아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비율이 50%를 넘겼다는 것은 실제 발전전력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남을 정도로 전기가 쓰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예비율이 70%를 넘어서는 날도 1~2일과 23~24일 등 4일이나 됐다. 이 중 최대치를 기록한 1일의 예비율은 75.6%에 달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전력 수요가 줄어드는 봄철 계절적 요인에 코로나19로 인한 제조업·상업시설 영업 부진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국내 전기 사용량 가운데 산업용 전기가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것을 감안하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산업 현장의 타격이 상당한 것으로 해석된다.

제조업 위기 징후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업들이 비용 증가로 부담스러워하는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에도 나타나는 중이다. 코로나19 등 영향으로 공장 가동이 줄어들자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도 '급락'하는 모습이다. 배출권이란 정부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단위 배출권을 할당하여 할당범위 내에서 배출할 수 있도록 하고, 할당된 사업장의 배출량을 평가하여 여분 혹은 부족분에 대해 권리를 구매하도록 한 제도다. 기업 입장에선 비용 증가 요인이다. 한때 4만원을 뚫고 올라갔던 배출권 가격은 4월 들어 서서히 내려가더니 3만원 초반까지 내려갔다. 약 25% 급락한 것이다. 기업들이 공장 가동을 줄이면서 배출량이 감소하고 시장에 매도물량이 쌓이면서 매수기업이 얼마든지 배출권을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어가는 제조업 경기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거란 전망이다. 지난 2월부터 부품 수급 문제와 전 세계 판매 마비로 매월 셧다운(일시 가동중단)을 거듭한 국내 자동차업계는 다음달에도 근무일 기준 일주일을 쉬어야 할 처지다.

현대자동차는 베뉴·아반떼·아이오닉과 포터 같은 수출차를 만드는 울산 3공장과 4공장 2라인을 각각 다음달 11~12일, 다음달 1~5일 휴업하기로 했다. 인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를 만드는 울산 1공장과 상용차(버스·트럭)를 생산하는 전주공장도 휴업이 유력하다.

기아자동차 소하리 1공장도 다음달 1~2일과 8~9일 등 총 나흘을 쉰다. 소하리 2공장은 1~3일, 8~10일 총 엿새간 휴업한다.

한국GM·르노삼성·쌍용자동차 노사도 다음 달 추가 셧다운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에 따라 국내 부품사도 휴업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5월에도 수출은 좋지 않기 때문에 광공업 생산은 나쁠 것"이라며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위축이 심화한 것이어서 국내 제조업에 도움을 줄 만한 마땅한 대책이 없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지용 기자 / 박윤예 기자 / 김연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