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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국제이슈+]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 지역인 마카오는 왜 조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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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마카오 카지노의 모습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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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중국정부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면서 홍콩시민들의 반발은 물론 미중간 갈등까지 격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홍콩 바로 옆에 위치해있으면서 홍콩과 마찬가지로 일국양제 체제가 진행 중인 마카오는 아주 잠잠한 상태죠. 홍콩사태에 함께 분노하는 대만과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심지어 마카오는 지난 2009년에 국가보안법이 아무런 반발없이 통과됐죠.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BBC 등 외신들은 지난 26일 마카오 최대 카지노 부호인 스탠리 호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1999년 중국으로 반환 직후 마카오의 상황에 대한 내용들도 함께 보도했는데요. 마카오가 세계적인 카지노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 본토의 부호들이 마카오 도박장들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영국 식민체제 하에서 국제금융 허브로 떠오른 홍콩과 달리 마카오는 반환 이전부터 중국자본에 크게 예속돼있었다는 것이죠.


일반적으로는 홍콩과 마카오는 둘 다 서구열강의 식민지였다가 중국에 반환됐고, 특별자치지역으로 지정돼 반환 이후 50년간 일국양제 체제를 유지하는 지역이란 공통점이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적 연원부터 지역주민들이 중국에 가지고 있는 반감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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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0년 포르투칼 식민지 초반에 지어진 마카오의 성바울성당의 모습. 1835년 대화재로 전소되고 전면부분만 남아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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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는 1842년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해 영국에 할양된 홍콩과 완전히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카오는 포르투갈이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뺏은 땅이 아닙니다. 마카오는 1542년, 포르투갈 원정대가 홍콩 북부 일대에서 당시 중국 명나라군과 싸워 패배한 이후 뇌물을 주고 마카오 일대 작은 섬들을 임대하면서 시작된 도시입니다. 마카오 지역은 이후 300년 넘게 명나라와 청나라 정부에 매년 토지 임대료를 지불했고, 엄밀히 이야기하면 식민지라 부를 수 없는 지역이었죠.


이들은 중국 조정이 필요로 하는 향신료를 동남아시아에서 구해다 공급해주면서 명나라와 청나라 조정과 잘 지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의 요청에 따라 용병부대를 보내주기도 했는데요. 선조실록에서 선조임금이 만났다는 명나라 흑인용병대인 '해귀'도 마카오 상단이 보내준 용병부대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수백년을 친밀하게 지내다보니 중국인들도 마카오의 포르투갈인들에 대해 그다지 반감이 없었습니다.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와 포르투갈간의 조약도 갱신되면서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정식 식민지가 되긴 했지만, 산업 측면에서 홍콩에 크게 밀리면서 마카오는 점차 홍콩의 배후지로 전락합니다. 홍콩에서 추방된 도박장, 마약밀수, 갱단들이 흘러들어오면서 오늘날 세계 최대 도박도시로 알려진 마카오의 근간이 생겨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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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카지노계의 거물이라 불렸던 스탠리 호의 모습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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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인 포르투갈은 이미 18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거의 약소국으로 전락한데다 1932년부터 1974년까지 살리자르 정권의 독재체제가 이어지자 대외 식민지 관리에 더욱 소홀하게 됩니다. 결국 1970년대부터 골칫거리로 전락한 식민지들을 모두 독립시키거나 반환을 추진하게 되는데, 범죄도시로 전락한 마카오도 그중 하나였죠. 중국정부조차 마카오를 받고 싶지 않다며 반환을 거부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1984년 중국과 영국간 홍콩반환 협정 이후 반환 분위기에 함께 묶이면서 가까스로 중국이 반환을 결정, 1999년에 반환이 이뤄지는데요. 당시 마카오 인구는 고작 43만명 정도로 홍콩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인구가 매우 부족했던 포르투갈 정부는 반환당시 마카오 시민 전체에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했습니다. 이 덕분에 기존 마카오 주민들은 언제든 포르투갈로 넘어올 수 있게 됐죠. 포르투갈의 국적법은 속인주의에 따르기 때문에 반환 당시 마카오 주민들의 자녀들 또한 포르투갈 국적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이 홍콩과 가장 큰 차이점이죠. 홍콩은 영국정부가 반환 이전 태어난 주민들에게만 이민 신청권을 인정해줬고, 이민 심사를 통과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유산계층들에게만 영국 국적을 부여했습니다. 나머지 주민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중국 국적을 받아야했죠. 이에따라 마카오 주민들은 중국정부와 맞지 않으면 언제든 포르투갈이나 혹은 유럽연합(EU) 가입국 어디로든 이주가 가능하게 됐습니다.


더구나 중국 반환 이후 마카오에 중국자본 투자가 더욱 활발히 이뤄지면서 마카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만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부유한 지역으로 탈바꿈됐죠. 중국 군경이 기존에 사실상 도시를 지배해왔던 갱단들과 조직폭력배를 처단해 치안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경제도 크게 발전했기 때문에 홍콩과 달리 반감이 자라지 않았습니다. 결국 뿌리부터 완전히 다른 역사와 문화, 경제사정으로 인해 중국정부에 대한 반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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