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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코로나19는 전기까지 갉아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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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투자 20% 감소 예상…신재생에너지 투자 늘려야

경향신문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7억8900만명이 전기 없이 생활하는 가운데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이들에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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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종말을 묘사한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흔한 배경은 ‘좀비의 창궐’이다. 해외 영화 <나는 전설이다>나 <28일 후>가 대표적이다. 주인공들은 가로등이나 지하철, 텔레비전 등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었던 기계들이 완전히 ‘올스톱’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런 영화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건 조명 없는 밤이다. 칠흑 같은 어둠을 유발하는 ‘전기의 실종’은 인간이 사라져 문명이 붕괴한 시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변전소에서 전압과 전류의 크기를 바꿔 수요자 근처에 있는 주상변압기까지 이동시킨 뒤 실내 콘센트에 도착한다. 실제로 전기는 인간이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생산되거나 유통될 수 없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을 덮친 지 반년이 됐다. 좀비처럼 인류를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하게 막았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번엔 정말 전기 공급에도 차질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 나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세계 에너지 투자가 지난해보다 20%나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4000억달러(494조원)에 달한다.

애초 IEA는 올해 에너지 투자액이 2%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결과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급락이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화석연료다. 석유에 대한 투자는 30%, 석탄은 15%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신재생에너지도 높은 파고를 피하지 못했다. 올해 태양광과 풍력 등에 대한 투자는 지난해 대비 10% 감소했다. 3년 전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속도를 더해가던 신재생에너지 확대 추세에 코로나19가 브레이크를 건 셈이다.

전력망을 고도화해 모자라는 전기는 나누고 넘치는 전기는 모아둘 수 있는 ‘전기 그리드’ 시스템에 대한 투자까지 줄고 있다. 이런 기술은 속성상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은 태양광이나 풍력을 광범위하게 보급하기 위해 꼭 필요한데, 미래 전력 공급시스템의 청사진까지 코로나19가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IEA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충격이 회복된 뒤에 에너지 부족 사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발전소를 만들고 전기를 이동시킬 인프라를 구축하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당장의 투자액 감소가 이런 장기 대책을 실행할 수 없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향후 코로나19 여파로 잔뜩 움츠러든 에너지 투자 심리가 회복되더라도 신속한 전기 공급이 가능한 화석연료 부활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코로나19로 시작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청정한 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빠르게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회복 국면에서 화석연료가 아닌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환경보호라는 또 다른 목적 달성도 가능하다는 취지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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