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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유상철의 차이나는 차이나] 시진핑의 홍콩 옥죄기 “우물이 강물 범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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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부글 끓는 중국 민심 달래고

“타협보다 투쟁으로 단결 구한다”

미국엔 중국 주권수호 의지 과시

홍콩이 더는 ‘특구(特區)’가 아니게 됐다. 왜?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 두 체제)의 종말’ 같은 어려운 말은 일단 제쳐놓자. 이제까지 뭐가 홍콩을 ‘특구’로 여기게 했나. 그건 홍콩에서 대놓고 중국 험담을 한다고 해도 붙잡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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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애플 데일리의 사주로 반중 시위를 이끌어온 리즈잉이 ‘홍콩 보안법’과 관련한 인터뷰 도중 왼쪽 눈에 눈물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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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앞으로 그랬다간 30년 징역에 처할 수도 있다. 지난 28일 ‘홍콩 보안법’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통과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격렬하게 반발하며 이튿날 홍콩에 부여하던 경제적 우대 지위를 박탈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면 홍콩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국과 같아진다. ‘특구’가 아닌 셈이다. “홍콩이 죽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바라던 바는 아니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왜 ‘보안법’을 밀어붙였나. 이런 상황 전개를 예견하고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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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8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표결에 부쳐진 '홍콩 보안법' 안건에 대해 녹색의 찬성 버튼을 누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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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지난해 6월 시작된 홍콩의 ‘반송환법’ 시위다. 시위대는 중국 오성홍기(五星紅旗)를 바다에 수장하고 중국 국가 휘장을 예사로 훼손했다. 중국계 기업이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중국 민심이 들끓었다.

홍콩에서 반중(反中) 구호가 커질수록 대륙에선 “중국은 뭐하냐”는 성난 목소리도 높아졌다. “한 줌도 안 되는 홍콩도 손 못 보냐”며 시진핑의 리더십에 의문을 표했다. 홍콩 시위 사태가 시진핑의 위상을 흠집 낼 정도로 수위가 올라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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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홍콩에서 중국 국가에 대한 모욕을 금지하는 ‘국가법’ 시행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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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말 열린 당 대회를 홍콩 사태 해결의 변곡점으로 삼았다. 먼저 인식을 바꿨다. 과거엔 “우물은 강물을 범하지 않는다(井水不犯河水)”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중국과 홍콩이 각기 분수를 지켜 서로 간여하지 않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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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홍콩 보안법’ 제정 수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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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홍콩 시위가 너무 나갔다고 봤다. ‘홍콩독립(港獨)’ 세력이 출현하고 시위에선 폭력 행사를 당연시하는 용무파(勇武派)가 등장했다. 당 대회를 통해 시진핑은 홍콩과의 타협 대신 투쟁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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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홍콩 시위대가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며 ‘홍콩 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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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毛澤東)이 구사한 “투쟁으로 단결을 구해야 단결이 되지, 양보로 단결을 구하면 망하고 만다”는 통일전선 책략을 따르기로 했다. 사람부터 바꿨다. 홍콩 통치의 양대 기구인 홍콩주재연락판공실(中聯办)과 홍콩마카오판공실(港澳办) 두 리더를 교체했다.

1월 4일 중련판 주임에 칭하이(靑海)성과 산시(山西)성 당서기를 역임한 뤄후이닝(駱惠寧)을 앉혔다. 2월 13일엔 저장(浙江)성 당서기를 지낸 정협 부주석 샤바오룽(夏寶龍)을 홍콩마카오판공실 주임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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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행사 기간 ‘홍콩 보안법’에 대한 표결이 찬성 2878표, 반대 1표, 기권 6표로 통과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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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을 홍콩통치 인사로 임명한 건 처음이다. 둘 다 시진핑 인맥이다. 시 주석이 대리인을 통해 홍콩 친정에 나섰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후 홍콩 정치의 무게 중심은 케리 람 홍콩특구 장관을 떠났다.

중련판이 위치한 시환(西環)이 홍콩을 통치한다고 해서 ‘서환치항(西環治港)’, 중련판과 홍콩마카오판공실 등 두 판공실이 홍콩을 좌지우지한다고 해서 ‘양판(兩办) 시대가 열렸다’는 말 등이 잇따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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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홍콩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 뒤의 전광판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모습이 보이고 있다. 전인대는 이날 ‘홍콩 보안법’을 99%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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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판은 4월 13일 홍콩의 일부 정치인이 홍콩을 외국에 팔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판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 것이다. 닷새 후 홍콩 경찰은 중국에 비판적인 언론인 빈과일보(頻果日報)의 사주 리즈잉(黎智英) 등 15명의 야권 인사를 무더기로 체포했다.

그리고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린 전인대에서 마침내 ‘홍콩 보안법’ 제정을 강행했다. 시진핑은 홍콩인을 세 부류로 나눠 다루려 한다. 첫 번째 ‘홍콩독립’과 ‘무력사용’을 주장하는 용무파는 보안법으로 철저하게 단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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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액션 스타 청룽이 ‘홍콩 보안법’ 통과를 지지하는 홍콩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명단에 지난 29일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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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화이비(和理非, 평화 이성 비폭력)’ 주장의 군중이다. 이들에 대해선 보안법에 명시한 애국 교육을 실시한다. 세 번째는 용무파와 화이비 군중 사이의 담장을 오락가락하는 담장파다. 이들에 대해선 강한 압박으로 다시는 정치적 도박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반발은 어떻게 대처하나. 크게 개의치 않으려 애쓴다. 1997년 홍콩 회귀 시 홍콩 GDP는 중국의 18%를 차지했으나 이젠 3.7%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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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람 홍콩특별행정구 장관이 지난 26일 ‘홍콩 보안법’ 제정에 대한 홍콩인의 이해와 지지를 촉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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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페이룽(田飛龍) 홍콩마카오연구회 이사는 “홍콩은 홍콩자치란 지방의 이익보다 이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국가이익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단체 부회장 류자오쟈(劉兆佳)는 ‘보안법’ 제정이 단순히 홍콩의 혼란 종식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미국에 보여주는 의미가 더 크다고 말한다. “중국이 주권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중국은 어떤 대가도 치를 것”이란 점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중국이 미국 5대 언론사의 기자를 추방할 때 처음으로 이들에게 홍콩 진입을 금지한 게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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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9일 백악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 박탈 등 대중 제재 조치를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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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에 군불을 때며 중국의 국가안전에 구멍을 내는 미국을 벌써 겨냥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홍콩 보안법’ 제정 강행은 결국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나는 두렵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설명이다. 그에 따라 홍콩의 ‘특구’로서의 명운 또한 반환 23년 만에 조종을 울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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