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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오거돈 영장 기각…여성단체 "힘·돈 있으면 구속 걱정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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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오거돈 前시장 구속 기각

"사안 중하지만 불구속 수사 원칙"

공대위 "구속하고 엄벌 처하라" 발끈

"어떤 시스템 만들지 논의해야" 지적도

중앙일보

강제추행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일 영장이 기각되자 부산 동래경찰서 유치장을 나서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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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판사가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진 이 사안에 대해 국민에게 던진 대답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은 비록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구속에 대한 걱정 없이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업무 시간에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로 경찰 수사를 받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구속영장이 2일 기각되자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즉각 '법원은 오거돈을 구속하고 엄벌에 처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같이 비판했다.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부산지법 영장담당 조현철 형사1단독 부장판사는 "사안이 중하지만 불구속 수사 원칙과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고, 주거가 일정해 도망의 염려가 없다"며 오 전 시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부산 동래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돼 있던 오 전 시장은 이날 오후 8시 25분쯤 풀려났다. 이 소식에 부산 지역 여성계와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부산성폭력상담소 등 부산 지역 200여 개 여성·시민단체가 모인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고위 공직자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재판부의 성인지 감수성을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냐"며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를 묻고 싶다"고 했다.

공대위는 "부산시라고 하는 인구 340만의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수장으로서 부산시의 각종 성평등 정책, 성폭력 예방 정책에 대한 의무를 지는 부산시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업무 시간에 부하 직원을 성추행했다"며 "피해자는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2차 가해로 괴로워하고 있고, 언제 다시 자신의 근무 장소로 안전하게 복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피해자는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는데, 가해자만 구속이 기각된 채 일상으로 돌아갔다"며 "권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고, 공직의 무거움을 알리는 이정표를 세울 기회를 법원은 놓치고 말았다"고 했다.

공대위는 "오늘의 구속영장 기각은 이제까지 법원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가해자를 감형시켜줬던 판결과 맥이 닿아 있다"며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데 법원은 여전히 변화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대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자가 불구속 재판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초범이라는 등의 이유로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질까 두렵다"며 "엄청난 권력과 부를 가진 가해자가 돈으로 무장한 채 변호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죗값을 받지 않은 채 빠져나간다면 시민들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앙일보

강제추행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일 영장이 기각되자 부산 동래경찰서 유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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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위는 "피해자가 밝혔듯이 가해자는 '법적 처벌을 받는 명백한 성범죄'를 저질렀다"며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언급하긴 했으나, 그것은 '명확하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심지어 (오 전 시장이) 범행 당시 기억이 없다는 보도도 나왔다. 가해자가 사퇴했더라도 그가 미친 사회적 파장은 너무나도 크다. 고위 공직자일수록 더욱 엄중하게 죄를 다스려 공권력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법원은 간과했다"고 했다.

양미숙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법원이 성 비위 관련 사건에 대해 소극적이고 안일한 판단을 해왔는데, 그것의 연속 선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속이 잘됐냐, 못 됐냐' 논의하기 전에 (오거돈 전 시장 사건이) 뭐가 문제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후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건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언론이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피해 여성이 누구냐' '어떤 행위가 있었냐' 등 표피적이고 자극적으로 접근했다"고 했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논의 구조가 있었다면 '구속해야 한다'라거나 '구속할 정도는 아니다'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재판부도 (이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다. 양 처장은 "오거돈 전 시장은 이미 고발된 상태여서 어차피 법적 처벌을 받는다"며 "이제는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지 논의해야 할 때"라고 했다.

김준희 기자, 부산=이은지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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