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日 수출규제’ WTO 제소 절차 재개… 한일 갈등 장기전 돌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 최후통첩 무시하던 日 “매우 유감” 양국 대치 심화 전망
한국일보

나승식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작년 11월 잠정 정지했던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절차를 재개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밝히고 있다. 산업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출규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이 결국 장기전에 돌입했다. 정부가 지난해 중단했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재개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난달 말까지 수출규제 해소와 관련, 일본정부의 입장을 요구했지만 기대했던 답변을 받지 못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일각에선 WTO의 최종결론이 나오기까지 2~3년은 걸린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일본 수출규제의 불법, 부당성을 입증 받고 유사한 형태의 재발까지 방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본도 한국의 이번 제소 절차 재개 결정에 곧바로 유감을 표명하면서 양국의 대치는 한층 더 심화될 조짐이다.

◇한일 갈등 장기전으로

나승식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지난해 11월 22일 잠정 정지했던 일본의 3개 품목 수출제한 조치에 대한 WTO 분쟁해결절차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즉각 “이제까지 당국간 의사소통을 진지하게 계속해 온 가운데 이번 발표는 매우 유감”이라며 “일본의 수출관리 운용 재검토는 WTO 협정에 정합성을 갖는다는 일본의 입장을 향후 제대로 설명해 나갈 방침”이라고 맞섰다.

한·일 양국 입장이 팽팽하게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다.

앞서 일본은 지난해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의 3대 소재 품목 수출을 규제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했다. 일본은 수출규제 근거로 △한·일 정책대화 중단 △재래식 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물품의 수출을 규제하는 ‘캐치올’ 통제 미흡 △수출관리 조직과 인력의 불충분 등 3가지 사유를 들었다.

지난 해 9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했던 우리 정부는 같은 해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면서 제소 절차도 중지했다.

이후 한국은 일본이 문제 삼은 3가지 사유를 모두 개선했으니 수출 규제 조치를 원상 복귀하라고 줄곧 요구해왔다. 지난달 12일에는 5월 말까지 수출규제 해결 방안을 밝히라고 촉구하며 일본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날렸다.

하지만 일본은 끝내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 일본 경제산업장관은 이날 오전 “(수출규제 조치는) 국내 기업이나 상대국 수출관리를 포함해 종합적으로 판단해 운용해 갈 것”이라고 고집했다.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하면서 사실상 우리 측 요청을 거부한 것이다. 나 실장은 일본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기대한 답변은 아니었다”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한국일보

◇실효성 떨어지는 WTO 제소 배경은

산업부는 조만간 WTO에 분쟁해결 패널 설치를 요청할 계획이다.

패널 설치 요청이 접수되면 WTO 분쟁해결기구(DSB) 회의를 거쳐 1~2개월 안에 패널이 설치되고 재판이 시작된다. 1심 격인 DSB 판정까지는 대략 1년이 걸린다. 양국 중 한쪽이라도 1심 결과에 불복하면 최종심인 WTO 상소기구(AB)로 올라가는데 여기서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추가로 3~4년이 소요된다. 특히 현재 WTO 상소기구가 신임 위원 선출 문제로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인 점을 감안하면 시일이 더 걸릴 수도 있다. 상소위원 선임은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결정되는데 WTO를 못마땅해하는 미국 측의 의도적인 방해로 상소기구 정상화 시점도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WTO 제소가 실효성이 있느냐는 논란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나 실장은 “WTO 제소를 통해 일본 조치의 불법, 부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WTO 제소가 일본의 수출허가제 남용 방지, 유사 조치 사전 예방에 효과적이라 생각한다”며 이번 조치가 일본의 수출규제 남용을 방지하는 차원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정부의 WTO 제소 절차 재개로 국내 기업들에 당장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지난해 7월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했을 때만 해도 한국 수출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지만 정부는 이후 소재ㆍ부품ㆍ장비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했고 업계도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국산화율을 높이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의 WTO 제소에 반발해 향후 우리 측 수출 규제 대상 품목을 확대하거나 허가 절차를 까다롭게 할 경우엔 또다시 국내 기업들의 고충이 커질 수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