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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오거돈 “성추행은 인정, 기억은 안 나”… ‘인지부조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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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2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오 전 시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오 전 시장 측은 그동안 경찰 수사에서 말하지 않았던 ‘인지부조화’를 언급했다. 인지부조화란 자신의 태도와 행동이 일관되지 않고 모순돼 양립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세계일보

강제추행 혐의를 받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일 오후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부산 동래경찰서 유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오 전 시장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피해자 말이 다 맞고 성추행 범행은 인정하나 구체적인 범행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인 또한 “평생 성실하게 엘리트로 살아온 오 전 시장이 순간 무엇에 홀린듯 그런 행동을 했고 이후 그런 행동이 스스로 납득이 안 되는 인지부조화 현상이 와서 범행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앞서 오 전 시장은 지난 4월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5분 정도 짧은 면담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고 이것이 해서는 안 될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경찰 피의자 조사 때는 추가 성추행 의혹을 묻는 말에 “그런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보통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피고인이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사례는 있지만 인지부조화를 주장하는 것은 드물다는 것이 법조계 전언이다. 오 전 시장의 인지부조화 주장은 범행의 우발성을 강조하기 위한 방어 논리라는게 경찰과 법조계의 반응이다.

오 전 시장은 지방법원장 출신과 부산동부지청장 출신의 법원·검찰 전관 변호사를 포함한 4∼5명의 변호인단을 선임해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오 시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는 부산성폭력상담소가 강하게 반발했다. 부산성폭력상담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고위공직자의 성폭력 사건에 대하여재판부의 성 인지 감수성을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던가”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상담소는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판사가 이 사안에 대해서 국민에게 던진 대답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은 비록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구속에 대한 걱정 없이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권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고, 공직의 무거움을 알리는 이정표를 세울 기회를 법원은 놓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데 법원은 여전히 변화하고 있지 않다”면서 “중대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자가 불구속 재판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초범이라는 등의 이유로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질까 두렵다”고 전했다.

부산 여성계와 시민단체도 강하게 반발했다. 김규리 부산여성단체협의회장은 “권력형 성추행은 지독한 범죄인데 사안의 중대성이 제대로 다뤄졌는지 의문”이라며 “여성계에서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정중한 사과도 받은 적도 없고 너무 흐지부지 넘어가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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