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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강간시킨 남성 징역 13년, 강간한 남성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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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랜덤채팅을 통해 여성인 척 하며 '강간 상황극'을 유도한 남성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반대로 실제 여성을 강간한 남성은 무죄를 받았다.

실제 성폭행을 저지른 남성은 무죄를 받고, 거짓말로 상황극을 꾸며 엉뚱한 여성을 성폭행 피해자로 만든 남성에게는 중형을 선고한 것이다.

조선일보

/조선DB


대전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용찬)는 4일 주거침입 강간 교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A(29)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법원은 A씨에게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5년간 신상정보 공개,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복지시설에 10년간 취업제한 등도 명령했다.

반면, 법원은 A씨의 교사(敎唆)로 피해 여성의 주거지에 침입해 강간을 하는 등 주거침입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B(39)씨에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에 따르면, 남성인 A씨는 지난해 8월 불특정 다수와 랜덤으로 온라인 채팅을 할 수 있는 모바일 앱에서 '35세 여성'이라고 속이고 접속했다. A씨는 앱을 통해 "강간 당하고 싶다" "만나서 '강간 상황극'을 해줄 남성을 찾는다" 등의 채팅을 올렸고, B씨는 이 채팅을 보고 A씨 계정에 연락을 했다. A씨는 B씨에게 실제 자신이 살고 있지 않은 가짜 주소를 알려준 뒤 찾아오라고 했다.

B씨는 A씨의 말을 듣고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A씨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다. 이 주소의 주거지에 강제로 침입한 뒤 그 곳에 살고 있는 엉뚱한 여성을 성폭행했다. 두 남성과 피해자 등 세 사람은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검찰은 "피고인들에 대한 엄한 처벌을 통해 이러한 범행이 다시 발생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이들과 같은 범죄자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등의 이유로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15년형, 징역 7년형을 구형했다.

A씨 변호인 등은 재판에서 "B씨에게 강간을 교사한 적이 없고 상황극을 하자고 한 것일 뿐"이라며 "실제 강간에 이르게 될 지 몰랐고 우연한 사정에 의해 강간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A씨)은 피해자가 범행 당시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한 후 B씨에게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 가도록 했다"며 "B씨에게 (강간 상황극) 실패를 바라지 않았고 피해자 강간을 위한 메시지를 보냈으며 강간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중형을 선고했다.

또 "A씨는 자신의 집 주변에 살고 있는 피해자 주거지의 현관 번호 등을 알아낸 후 강간 상황극을 벌였고, B씨를 교사해 성관계를 하게 해놓고 피해자 집에 가서 살펴보는 대담성을 보였다"며 "변명으로 범행을 부인하고 축소했으며 다른 피해자들에게 (강간 상황극) 메시지를 보내는 등을 고려해 양형을 결정했다"고 했다.

B씨 변호인 등은 "B씨는 A씨에게 완벽히 속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벌었다"며 "강간의 범의가 없었고, B씨는 도구로 이용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강간 상황극이 아니라 실제인지 알면서 범행을 했다는 의심이 든다"면서도 "그러나 B씨는 A씨에게 속아 강간범 역할을 하며 성관계를 한 것으로 보여 실제 피해자에 대한 강간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등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B씨에게 "민사적으로는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 본인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평생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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