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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학대 알고도… 아무도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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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가방속 갇혀 숨진 아이

경찰, 한달전 수사 시작했지만

피해자 직접조사·분리보호 안해

보호기관도 “가정에 두고 관찰”

가해 부모 말 믿고 안일한 대응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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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동거녀에 의해 여행 가방에 갇혔다가 의식불명에 빠진 어린이가 끝내 숨진 가운데 경찰이 한달 전 동거녀 ㄱ(43)씨의 아동학대 혐의점을 찾고도 피해아동에 대한 직접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4일 천안 서북경찰서와 충남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동보호기관)의 말을 종합하면, 경찰은 ㄱ씨가 피해아동인 ㄴ(9)군을 학대한 것 같다는 병원의 의심 신고를 받고도 피해아동에 대한 대면 진술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ㄴ군은 어린이날인 지난달 5일 밤 10시께 머리가 찢어져 ㄱ씨, 친아버지와 함께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은 ㄴ군의 손과 엉덩이에 멍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틀 뒤인 7일 경찰에 학대의심으로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다음날 아동보호기관에 통보만 한 뒤 가정 방문조사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학대피해가 심하지 않은 것 같다”는 아동보호기관의 의견과 병원에서 찍어 보낸 손목과 손등 상흔 사진만을 토대로 ㄴ군을 학대 가해자로부터 분리하지 않았다.

‘학대우려가정’에 대한 모니터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ㄴ군 가정을 에이(A)등급 ‘학대우려가정’으로 분류해놓고도 신고 접수(지난달 8일) 다음날 경고 전화 외에 어떤 점검도 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ㄴ군에 대한 학대 정황이 처음 포착된 한달 전부터 지난 1일 가방 학대 발생 때까지 단 한 번도 피해아동을 직접 만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셈이다.

한겨레

4일 여행 가방에 갇혔다가 숨진 ㄴ군이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은 순청향대 천안병원 장례식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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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집을 방문해 조사를 벌인 충남 아동보호전문기관도 피해 아동에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기관 관계자는 “병원에서 찍은 사진으로는 손 멍 자국이 있었는데 가정 방문했을 때 보니 사라진 상태였고, 머리에 꿰멘 자국 1cm가 있었다. 부모들이 일반적으로 방어적으로 나오는데 숨진 아이의 부모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아이를 가방에 가뒀다면 최근 얼마전부터 학대의 징후들이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천안서북경찰서 관계자는 “아동보호기관이 아동 상담·조사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 의견을 신뢰해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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