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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시장권력이 더 세졌나, 금융당국과 맞짱뜨는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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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우리 잇따라 ‘DLF’ 징계 제소

신한 등 키코 배상 계속 수용 미뤄

정부 내 미묘한 갈등·엇박자 한몫

‘금융지주 전환에 입김 커져’ 해석

이런 상황 속 ‘윤석헌 조사설’도 나와

“금융정책·건전성 감독 중심 한계

징벌적 손배·집단소송제 도입해야”


한겨레

그래픽_고윤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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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와 은행의 불복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이런 금융사의 행태를 두고 감독당국 내에선 “시장 권력이 지나치게 세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경계가 나온다. 징계 관련 현안을 놓고 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와 감독을 맡는 금융감독원이 번번이 엇갈리는 입장을 노출하면서 금융사들의 이런 태도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지난 1일 금감원이 국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F·디엘에프)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내린 문책경고 처분의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지난 3월8일 행정소송 제기에 이어 두번째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대구은행도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해 12월 결정한 키코(KIKO) 배상안에 대해서 ‘배임’ 여부를 따져야 한다며 5차례나 계속 수용 결정을 미루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금감원의 결정에 불복하고 있는 모양새다.

금융권과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이러한 상황이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관치’의 정도는 덜해졌지만, 정부의 규제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는 은행권이 금융당국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과거였다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 였을 테고, 이번에 소송을 한 것도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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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의 이러한 태도는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등 이른바 금융당국이 예전처럼 ‘한목소리’를 내지 않은 상황을 포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올 초 금감원장이 중징계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안에 대해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는 찬성표를 던졌다. 금융위의 영향력 하에 있는 예보가 ‘표 대결’에서 금감원의 의도와는 엇박자를 보인 셈이다. 손태승 회장 중징계 당시 금융위는 “금융위가 결정할 사항은 금융위가, 금감원이 결정할 사안은 금감원이 판단할 것”이라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하나은행의 행정소송 제기 뒤에도 금감원 쪽에서는 “은행들이 금융지주로 전환하면서 입김이 너무 커졌다”, “시장권력이 더 커졌다”는 불만이 나왔지만, 금융위 쪽의 반응은 미묘하게 달랐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은행들이 말을 안 듣는다기보다 과거 10년, 20년을 돌이켜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정부의 힘이) 희석되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권 안팎에선 최근 불거진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윤석헌 금감원장 조사설도 금감원에 대한 은행들의 불만에 힘을 실었다고 보고 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청와대가 (조사설에 대해) 정확한 사실 여부를 밝히지 않는 등 청와대와 금융위가 방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금감원이 외롭게 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개혁적 인사로 선임된 윤석헌 원장은 지난 4월 취임 2년을 맞은 기자간담회에서 “(제일 고비를 맞았던 순간은) 최근이었다. 디엘에프 사태 이후에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며 “(하지만) 시계를 몇 달 돌려도 내 의사결정은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금융당국 내 미묘한 갈등 또는 힘의 공백은 금융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금융정의연대와 참여연대 등은 4일 하나은행 본점 앞에서 금감원 제재에 불복하는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하나은행 디엘에프 배상심의위원회가 한 푼이라도 더 적게 배상하려는 꼼수를 쓰고 깜깜이 배상률 통보를 해 피해자들은 망연자실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또 “금융정책과 건전성 감독을 중심으로 하는 현 금융위, 금감원 체계만으로는 실효성 있게 감독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제도 도입 등을 통해 금융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금감원이 나서 키코 배상건 잘 끝날 줄 알았는데…”

조봉구 키코 공동대책위원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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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장을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코막중공업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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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배상건이 잘 마무리돼 이제 사업이나 잘해야겠다 했는데….”

3일 서울 여의도 코막중공업 사무실에서 만난 조봉구 키코(KIKO) 공동대책위원장(코막중공업 대표)은 “금감원이 나서서 은행들과 협의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신한·우리·케이디비(KDB)산업·케이이비(KEB)하나 등 6개 은행에 키코 불완전판매로 피해를 본 기업 4곳에 모두 255억원을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2008년 키코로 350억원 피해를 본 뒤 대형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해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했지만, 10년 넘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결과였다.

하지만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배상을 거부하거나 결정을 차일피일 미뤘다. 조 위원장은 “결국 은행들이 배상을 안 하겠다는 쪽으로 굳은 것 같다”고 말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환율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중소기업들은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은행의 권유(환 헤지)에 가입했지만, 2008년 전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환율 폭등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수출 중소기업인 조 위원장의 회사 역시 법정관리까지 가는 위기에 처했다가 최근 정상화 과정에 있다.

10년이 지나도록 그의 투쟁은 왜 끝나지 않는 것일까. 조 위원장은 “금융권과 검찰·법원·대형로펌, 언론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이너서클(기득권 내부자들)’이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최근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최고 경영진들이 금감원이 내린 디엘에프(DLF) 불완전판매 관련 징계에 대해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서도 “금융 권력이 로비스트로 활용할 수 있는 이너서클을 가지고 법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위원장은 해결책으로 “관치 논란이 있더라도 금융당국이 나서서 이런 구조를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 사진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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