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쉬엄쉬엄' 정찬헌이 건져올린 '7할5푼'의 값진 승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포티비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포티비뉴스=잠실, 이재국 기자] '빠르게'보다는 '정확히'였다. '욕심'보다는 '무심'이었다. 압도적인 구위는 아니었지만 상대 타선을 압도했다. '비움' 속에서 '채움'의 미학이 펼쳐졌다.

LG 트윈스의 정찬헌(30)은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등판해 7이닝 동안 3안타 2볼넷 무실점의 호투로 팀의 11-0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2승(1패)째이자 개인 삼성전 5연승(2015년 4월 5일 잠실 경기 이후)을 올렸다.

2008년 프로 데뷔 후 최고의 피칭. 무엇보다 그의 등번호와 같은 11개의 탈삼진 숫자가 눈길을 모았다. 개인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이었다. 종전에는 5월 27일 대전 한화전을 비롯해 4차례 6탈삼진을 기록한 바 있다. 이날 무려 2배 가까이 탈삼진을 뽑아낸 셈이다.

7이닝 투구 역시 개인 최다 이닝 타이기록이다. 주로 불펜 요원으로 활약해 온 그였기에 기록을 찾다 보면 선발로 뛰었던 프로 데뷔 첫해 20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LG 정찬헌 개인통산 7이닝 투구 일지

①2008년 5월 20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7이닝 2안타 2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승리투수)

②2008년 9월 12일 목동 우리 히어로즈전=7이닝 4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노디시전)

③2020년 6월 4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7이닝 3안타 2볼넷 11탈삼진 무실점(승리투수)

개인 통산 3번째 7이닝이라고 해도 이날의 내용은 프로 데뷔 이후 최고의 인생투라 할 만하다.

투구수 94개 중 스트라이크 65개. 스트라이크 비율은 69.1%에 달했다. 이닝당 투구수는 13.4개. 26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21타자에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질 정도로 과감한 승부와 공격적 투구를 펼쳤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빠르게 던지는 데 신경쓰기보다는 정확히 던지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깨끗하게 날아가는 공 대신 지저분한 움직임을 보이는 공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직구(23개)보다 포크볼(25개)을 더 많이 던졌다. 오른손 검지 끝에 찍혀 수직으로 회전하며 낙하하는 너클커브(17개)는 삼진을 잡는 결정구로 위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투심패스트볼 16개와 슬라이더 13개를 곁들였다.

꼬불꼬불하게 전개돼 온 그의 야구인생만큼이나 공은 어지럽게 홈플레이트 상하좌우를 찔렀다. 최고 구속 144㎞로 압도적 구위가 아니었지만 삼성 타자들은 현란한 정찬헌의 팔색투에 압도당했다.

허리 수술과 재활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기에 아직 정상적인 몸이 아니다. "한 번 던지고 나면 2~3일은 힘들다"고 솔직히 고백할 만큼 코칭스태프가 관리를 해줘야한다. 올 시즌 선발 한 번 던지고 엔트리에서 말소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거의 열흘에 한 번꼴로 나서고 있다.

등판일이 '띄엄띄엄' 있다 보니 겉보기에는 '쉬엄쉬엄' 던지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그저 '거들어 주는 투수' 정도로 보이지만, 나올 때마다 팀이 이기니 이만한 실속형 투수가 따로 없다. 정찬헌은 올 시즌 4차례 선발등판했는데 팀은 3차례 이기고 한 차례 졌다. 정찬헌이 등판하는 날 LG의 승률은 7할5푼이다.

첫 등판이던 5월 7일 잠실 두산전에서 4이닝 5실점(3자책점)을 기록해 팀이 3-9로 패했다. 그 역시 패전투수가 됐다. 그러나 그 이후 그는 3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고, 팀은 3연승이다.

1군 엔트리에 5월 16일 잠실 키움전에서 승리투수는 되지 못했지만 6이닝 3실점으로 팀의 5-3 승리에 밑거름이 됐다. 올 시즌 팀의 최다 연승 기록인 6연승 날개를 달아줬다.

이튿날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가 5월 27일 대전 한화전에 선발 복귀한 정찬헌은 다시 6이닝 3실점으로 팀의 15-4 대승을 이끌며 시즌 첫 승을 수확했다. 팀도 덩달아 3연승의 신바람을 냈다.

그리고 또 다음날인 5월 28일 부상자명단에 오른 뒤 이날 1군 엔트리에 복귀해 팀 타선의 넉넉한 지원 속에 7이닝 11탈삼진 무실점 역투로 11-0 승리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팀의 시즌 첫 3연전 스윕패를 막아냈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승리였다.

LG가 시즌 초반 2위(17승9패)를 달리는 데에는 '연승은 이어주고 연패는 끊어주는' 정찬헌의 알토란 같은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극찬을 잘 하지 않는 LG 류중일 감독이지만 이날 경기 후에는 이례적으로 '특급'이라는 단어까지 집어 넣어 "정찬헌이 특급 피칭을 보여줬다"며 기뻐했다.

정찬헌은 "아내가 너무 욕심부리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해줬다"면서 "내가 힘든 수술을 거쳐 마운드에 오른 모습을 보니 기쁘고 감회가 새로웠던 것 같다. 첫 승했을 땐 울었다고 하더라. 감동 받은 것 같다"며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한때는 정찬헌의 등판일이 불안했던 LG 팬들이지만, 이제 '승리요정' 정찬헌의 등판일이 기다려지고 있다. '신의 한 수'가 된 선발 변신. 다음 등판일이 궁금해진다.

스포티비뉴스=잠실, 이재국 기자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