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부인 `당선축하금` 3000만원 받은 남편은 왜 무죄 선고를 받았을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난 2014년 6월 4일 제6회 지방선거가 끝나고 3개월 뒤인 9월 10일 서울 양천구의 지역사업가 A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김수영 현 양천구청장의 남편이자 전 양천구청장인 이제학 씨(57)에게 현금 3000만원을 신문지에 싸서 전달했다. A씨가 미리 준비해둔 현금 뭉치를 이 전 구청장에게 건네는 장면은 그날 사무실에 있던 폐쇄회로(CC) TV에 고스란히 찍혔다.

지난해 11월 검찰은 한 시민단체로부터 이 전 구청장의 금품 수수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를 수사해달라는 고발장을 접수한 뒤 그를 12월 구속 기소했다. 그런데 지난 5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신혁재)는 이 전 구청장이 3000만원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알선의 대가로 돈이 전달됐음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본지는 해당 사건 판결문을 입수해 법원의 판단 근거를 되짚어봤다.

◆3000만원은 보험금 또는 당선축하금?

재판부가 이 전 구청장에 대해 무죄 선고를 내린 결정적 이유는 A씨가 전달한 돈이 무슨 대가를 바라고 준 게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전 구청장이 A씨의 사업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돈의 성격을 불이익 방지와 관리 차원의 '보험금' '당선 축하금'으로 봤다.

재판부는 "지방 선거 결과 피고인(이 전 구청장)의 처 김 구청장으로 당선되자 A씨로서는 향후 자신의 사업과 관련하여 양천구청 측으로부터 불이익을 입게 될 것을 상당히 우려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 즉 A씨로서는 피고인 부부와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고, 이를 통하여 자신의 사업에 적어도 손해는 끼치지 않도록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피고인에게 일종의 '보험금' 또는 '당선 축하금' 명목의 돈을 교부할 유인이 있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왜 A씨가 받을 불이익을 우려했을까. A씨는 한 때 미래통합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을 맡았다. 제6회 지방선거에서도 미래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김 구청장이 당선됐기 때문에 재판부는 A씨가 김 구청장 측과 관계를 회복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A씨 양천구내 건물 짓고 있었지만 '현안 없다' 판단

건축 시행사 대표인 A씨는 당시 양천구에서 아파트 건물을 짓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A씨는 2014년 9월 이 전 구청장에게 금품을 건네며 "서류가 좀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판결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양천구청장에게 청탁을 통해 해결해야 할 '현안'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금품을 교부할 당시에는 공사가 마무리될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건물 준공과 관련해 양천구청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아야 할 시급한 현안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가 이 전 구청장에게 "법을 위반해서 무엇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한 것도 무죄 판단의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해당 아파트 건물 지하 공간의 대규모점포 개설등록과 관련해서도 현안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유는 5년여 뒤인 2019년 6월께 A씨가 점포 개설 등록 해결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며 돈 봉투를 건네려 하자 이 전 구청장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김수영 구청장 '환영'...檢, "김 구청장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는 계속"

이같은 법원 판결에 대해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지역에서 건설업을 하는 사업가는 구청의 인·허가와 관련해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재판부가 대가성과 관련해 엄격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이 김 구청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법원이 이 전 구청장이 받은 돈의 성격을 '보험금' '당선 축하금'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법 2조는 '누구든지 이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치자금을 기부하거나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선 축하금, 보험금은 정치자금법이 허용하는 정치자금에 속하지 않는다. 이 전 구청장을 고발한 시민단체는 김 구청장도 정차자금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다만, 검찰이 김 구청장을 기소하기 위해서는 남편인 이 전 구청장이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돈을 부부가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검찰 관계자는 "김 구청장에 대한 혐의는 수사중"이라며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해 이 전 구청장에 대한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구청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배우자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제기들이 모두 해소 되었다"며 "구민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리며 앞으로 다시는 구민들께 이러한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도록 스스로는 물론이고 주변까지 철저하고 엄격하게 단속 하겠다"고 밝혔다.

[김유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