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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빵 굽는 타자기] 서울 길따라 떠나는 역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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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서울길2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운현궁. 한 번에 주워섬기기도 쉽지 않은 이 조선 시대의 궁들은 모두 서울의 강북에 있다. 광화문 인근 회사를 다닌다면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점심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 옆에 궁은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서울 도심에서 오늘 하루를 보내는 누군가의 삶에 풍경처럼 스며 있을 궁이 그저 하릴없이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을리는 없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여러 궁들에는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최연이 쓴 '이야기가 있는 서울길2'는 이 궁들의 대표격인 경복궁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조선시대 왕들이 머문 궁에서 시작하지만 그 길은 한성백제와 고구려까지 이어진다. 북한산 진달래능선에 잠들어 있는 독립열사와 민주열사들의 묘역도 둘러본다. 책을 따라 걷는 길은 우리의 일상 속에 있었지만 도통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서울학교', '고을학교', '간도학교' 등을 이끌며 인문여행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왔다. 그는 헌책방을 순례하고 자료를 모으면서 서울과 조선에 대한 지식을 쌓았고 걷기와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결합한 서울학교를 만들었다. 그 결과물들은 2018년 펴낸 '이야기가 있는 서울길'과 이번 책에 나눠 담았다.


경복궁에서 출발하는 이 책이 안내하는 길은 서울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시간 여행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조선의 도읍지였던 서울은 지금의 행정구역만이 아니라 경기도 일원을 아우르는 권역이었다.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고 그 절대권력이 핏줄에 의해 세습됐기 때문에 왕을 포함한 왕족들의 생활권역이 모두 도읍지 역할을 했다. 왕과 왕족들의 무덤, 사냥 터, 왕족 소유의 많은 별서와 정자, 왕이 도성을 떠나 머무는 행궁은 도성에서 100리 안쪽인 교(郊)의 지역으로, 대부분 지금의 경기도를 포함하는 곳이었다. 또한 서울은 한성백제의 수도였을 뿐 아니라 고구려, 신라의 유적도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남경'이었다. 도처에 여러 시대에 걸친 다양한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이유다. 개항 이후 서구문화의 유입과 함께 펼쳐진 근대 문화유산 또한 곳곳에 있으며 대한제국의 멸망에 이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생채기도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에 산재한 역사문화유산은 그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작가는 서울의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구태여 강조하기 보다는 현재를 직시한다. 서울의 문화유산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불타 없어졌고, 일제에 의해 훼손됐으며, 한국전쟁의 참화를 견뎌야 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문화유산도 도시 개발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쳐져 원형을 잃고 말았다. 일례로 한성백제 시대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흙으로 쌓았던 삼성리 토성의 자리에서 작가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유단식의 축성 형태가 뚜렷한 성벽이 350m 가량 남아 있었습니다. 강북의 경기고등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마구 파헤쳐져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다만 경기고등학교 북쪽의 축대 부분을 토성의 흔적으로 추정할 따름입니다"라며 아쉬워 한다. 작가는 이렇게 상처투성이인 채 점으로 존재하는 문화유산을 선으로 연결하고, 면을 만들고, 온전한 입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한다. 이를 위해 '이야기가 있는 서울길' 코스를 함께 걸을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코스는 5시간 남짓 걷는 일정이다. 각 길은 주제를 지니고 있다. 경복궁에서 시작하지만 사대문 안, 궁궐 위주에서 벗어나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내사산(內四山)과 각각의 산이 품고 있는 마을을 다룬다. 북한산, 관악산 등의 외사산(外四山)과 병자호란의 무대이자 행궁이 있는 남한산성 어름까지를 묶어 개발한 길도 소개한다. 이렇게 이어지는 길들을 책속에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미처 알지 못했던 서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책을 들고 나가 이 길들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도 움튼다.


(이야기가 있는 서울길 2/최연 지음/가갸날/1만6800원)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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