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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취재파일] 北 "갈 데까지 가보자"…문제는 대북전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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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담화를 내놓은 지 하루 만에 북한이 통일전선부 명의로 더 강도 높은 대남 비난 담화를 내놓았습니다. 북한은 5일 밤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에서, 김여정의 담화를 '교류와 협력에 나서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하는 남한의 일부 시각에 대해 비난하면서 "갈 데까지 가보자"라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북한 통일전선부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남한에서 "조금이나마 미안한 속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다시는 긴장만을 격화시키는 쓸모없는 짓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며, 김여정 제1부부장이 추가 조치 집행을 위한 검토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첫 순서로 할 일도 없이 개성공업지구에 틀고 앉아있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부터 결단코 철폐할 것이며 연속 이미 시사한 여러 가지 조치들도" 시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원래 개성공단에 위치해 있다 코로나19로 서울로 철수한 상태입니다. 현재는 아침 저녁으로 전화 한통씩 해서 연락망에 이상이 없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전부인데, 이 전화 통화를 끊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전화를 안받으면 그만이기에 북한으로서는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북한은 또, "남측이 몹시 피로해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차 시달리게 해주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예시한 금강산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철거,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을 시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하면 육상 비무장지대에서 총격을 가하거나 서해 5도 지역에서 해안포 사격을 가하는 등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가 재발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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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종합병원 건설장에서 규탄대회에 나선 모습 (사진=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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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오늘(6일)자 노동신문 1면에 김여정 담화를 접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을 실었습니다. 탈북자들의 대북전단 살포가 특대형 범죄 행위이며 남한 당국이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것이라는 등 김여정 담화의 연장선입니다. 관련 사진도 2장 실렸는데, 평양종합병원 건설현장과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대북전단 살포와 남한당국을 비난하는 규탄대회에 나선듯한 모습입니다. 강도 높은 대남 비난 내용을 담은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도 노동신문에 실렸고, '절대로 용납못할 적대행위'라는 제목의 별도 논평도 노동신문에 실렸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노동신문에 대남 비난 내용을 집중적으로 싣고, 각 부문별로 대남 비난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는 것은 대남 비난 분위기를 전사회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도입니다.

● 北, 왜 남한만 몰아칠까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이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선까지 북미대화가 힘든 상황에서 남한이 역할을 하기도 어렵고, 유엔 제재 하에서 남북관계 개선해봤자 얻어갈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남한을 몰아세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대북전단 살포가 어제오늘 일어난 일도 아니고, 김여정 담화가 나오자마자 우리 정부는 국내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전단살포를 금지하는 법 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김여정 담화 4시간 만에 이런 입장을 내놓은 것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한 것이고, 남한 시스템을 알고 있는 북한이 이해하지 못할 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렇게 남한을 몰아치는 걸까요?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에서는 대북전단 피로에 시달려오다 5월 31일 대북전단 살포를 계기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돼 "적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을 더욱 확고히 내렸다"고 하는데 궁색한 변명으로 들립니다. 그렇게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오다 "더 이상은 못참겠다"라고 나와야 하는 것이지, 갑자기 문제를 제기하고 북한 전역에서 주민들까지 동원해 남한 규탄 분위기로 가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북한에게는 긴장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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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자 단체들이 대북 전단을 날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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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북한에게는 남북관계에서의 긴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대북전단을 빌미로 삼았지만, 북한은 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할 때부터 남한이 어떻게 대응하든 이걸 이유로 남한을 비난하고 내부적으로 긴장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에게 왜 긴장이 필요할까요. 코로나19와 이로 인한 국경 봉쇄, 대북제재의 지속으로 경제가 안 좋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내부를 결속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있지만 확실치는 않기 때문에 좀 더 북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해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긴장이 필요한 북한의 내부 수요가 어느 정도 해소되어야 상황의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앞으로 북한의 추가 행동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대비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이 기회에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의지를 꾸준히 표명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가.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은 철저히 이익에 기반해 대외관계를 가져가는 실리주의적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상대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예전에 언제 비난한 적이 있었냐는 듯이 관계 개선을 추구합니다. 2018년 평창올림픽 국면에서의 남북 관계 개선과 북미정상회담 성사, 그리고 한미와의 관계 개선 과정을 통해 한동안 소원했던 북중 관계를 회복시킨 것이 북한의 실리주의 외교를 보여줍니다. 반면, 관계개선의 이익이 다했다 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냉랭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혹시 올해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가 당선돼 새로운 북미 관계 정립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남한에 접근해올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새 행정부에 접근하기 위해 남한의 도움이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남한을 철저히 실리주의라는 관점에서 대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명제에 너무 집착하면서 오히려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북한에게 남북 관계는 언제든지 자신들이 손만 내밀면 복원이 가능한 것이기에 고려할 유인이 별로 없습니다.

남북 관계를 빨리 개선해 북한의 비핵화를 설득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마음이 급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도 정부가 보다 현실론에 기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정식 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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