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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백인 사모님은, 흑인의 하나뿐인 아들을 죽게 내버려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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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엄마는 학교가 문을 닫자 아들을 일터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백인 집주인의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돌아오니 아들은 없었다

조선일보

왼쪽은 추락사한 5살짜리 시우바와 엄마가 함께 찍은 사진. 오른쪽은 시우바 엄마의 고용주/imatogrosso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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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백인 집주인에게 잠시 맡겨진 흑인 가정부의 외아들이 추락사했다. 분노한 브라질의 흑인들은 북동부 헤시피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문구를 들고 연일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AFP통신이 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브라질의 흑인 비율은 56%이지만, 평균소득은 백인의 절반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인종차별 시위에 불을 붙였듯, 브라질에서는 이 사건이 인종 간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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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백인 집주인과 함께 있다가 추락사한 시우바가 생전 환하게 웃고 있다./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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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짜리 흑인 어린이 미구엘 다 시우바는 지난 2일 가정부인 엄마를 따라 백인 고용주의 아파트에 갔다. 코로나 사태로 학교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엄마가 고용주의 애완견을 산책시키기 위해 외출하자 시우바는 엄마를 뒤쫓아 가겠다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백인 집주인은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는 시우바를 말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을 뻗어 제일 아래층이 아닌 맨 위층 버튼을 눌러줬다. 모든 과정은 폐쇄회로TV에 촬영됐다. 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까지 올라간 아이는 발코니 난간을 넘다가 숨졌다.

브라질 언론들은 “아이가 1층에 도착한 줄 알고 난간을 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백인 집주인이 시우바의 추락사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해석도 가능한 이유다. 그러나 백인 집주인이 의도적으로 아이에게 가해하지 않았고, 아이 실수가 사망의 직접적 이유이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한쪽에 지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있다.

시우바의 엄마는 브라질 방송 인터뷰에서 "고용주는 자신의 아이들을 종종 내게 맡겼다. 그러나 정작 내 외아들을 잠시 맡겼을 때 그는 내 아이를 돌봐주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줄 인내심조차 없었다"고 격분했다. 백인 고용주는 형사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으나 보석금 3900달러(470만원)를 내고 풀려났다.

사연이 알려지자 사고가 일어난 브라질 헤시피에선 수백명의 시위대가 모여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브라질 소셜미디어에서는 ‘시우바를 위한 정의’란 해시태그를 달며 인종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역사학자 라리사 이부미는 "브라질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또 한 명의 흑인 어린이를 잃게 했다"며 "흑인 여성들을 백인 여성들의 하인으로 취급하는 구조적 문화의 결과"라고 썼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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