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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명백한 오보도 고치지 않는 조선일보의 이상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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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면에 ‘바로잡습니다’ 신설 한달]

긍정 평가 있지만 실효·진정성 논란

‘윤미향 딸 학비’ 오보, 온라인만 ‘수정’

왜곡 보도 정정않고 이름·직함 등 사소한 고침 다수

정정보도에도 추가 정정보도 청구 제기되기도

“책임있는 자세·저널리즘 기준 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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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불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운데 신문·방송 등 기성 언론들이 추락한 신뢰도 회복을 위해 공정·정확하지 않은 보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정정보도에 나섰다. 특히 <조선일보>는 6월1일 1면에 ‘오직, 팩트’라는 알림 기사를 통해 “‘잘못된 보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며 ‘바로잡습니다’에서 신속하게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정정보도를 외면해왔던 언론들의 관행에 비춰 전향적 시도라는 긍정 평가도 있으나 실제 운영에선 심각한 오보는 외면한 채, 단순 오기의 수정이 많고 ‘바로잡습니다’조차 오보·왜곡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진정성과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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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지역 유력 일간지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6월2일치 지면.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에 빗대어 ‘건물도 소중하다’라는, 인종차별을 희화화한 제목을 내보내 독자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담당 편집장이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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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잡습니다’도 오보 논란

조선일보는 2면에 ‘바로잡습니다’ 고정 코너를 신설하며 중대한 현실 왜곡 때 오보를 낸 경위, 충실한 반론보도 등 5가지 게재 원칙을 밝혔다. 이 신문은 6월 한달간 발행일 기준으로 엿새를 빼곤 매일 많게는 5건 등 모두 30여건의 정정 보도를 실었다. 선언 이전인 5월엔 단 1건이었던 것과 견줘 건수는 크게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정작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오보에는 침묵해 왜곡·편파 보도가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예를 들어 “윤미향 의원 ‘딸 학비, 김복동 할머니 장학금으로 냈다’”는 보도는 명백한 오보임에도 온라인 기사에 몇 차례 수정만 하고 별도 정정보도는 없었다. 대신 ‘윤미향 교수’는 ‘윤미향 전 대표’의 잘못이라는 직함 바로잡기에 그쳐 핵심을 피했다는 지적이다.

‘바로잡습니다’ 코너가 오보를 냈다며 정정보도 청구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은 정의연 사태가 터지자 6월8일 ‘권력이 된 시민단체’ 시리즈를 통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2019년 종편 시사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며 <티브이조선> <채널에이> <엠비엔> 등 보수 성향 매체만 대상으로 하고 <제이티비시>는 제외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민언련은 사실과 다르다며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조선은 17일치에 이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민언련은 제대로 바로잡지 못한 ‘바로잡습니다’라며 정정보도 청구에 나섰다. 신미희 민언련 사무처장은 “조선일보 쪽에서 오독·착오가 있었다고 시인했지만, 정작 오보 내용과 무관한 2020년 별도의 사업을 따로 취재해 정정보도라고 주장하며 2차 오보와 왜곡을 했다. 이렇게 자사 입장만 고집한다면 이 코너가 왜 필요하냐. 폐지하는 게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조선 쪽은 “바로잡습니다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주장해 결국 언론중재위로 넘어가게 됐다.

이 신문의 한달간 유의미한 정정보도를 꼽는다면, 5일 “측근의 친척, 그 아들까지 연결돼 매입… ‘노른자 블록’ 30% 장악”(2019년 1월19일 보도)이라는 손혜원 전 의원 관련 기사이다. 1년5개월 만에 나온 정정보도였다. 그러나 이는 법원 판단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또 10일 ‘미 FDA 한국 진단키트 사전승인? 알고 보니 외교부의 가짜뉴스’(3월30일 보도) 정정기사도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으로 ‘오직 팩트’ 선언과는 거리가 있는 대목이다. 대신 한달간 이 신문의 ‘바로잡습니다’를 채운 내용은 ‘유명리 새재마을’은 ‘유평리’의 잘못, 군대의 ‘사단’이라는 표현은 ‘연대’의 오기, 금부도사는 종6품이 아니라 종5품 등 주로 단순 오기들이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조선일보가 내부 기준을 세워 ‘바로잡습니다’ 제도를 도입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뉴스가치 편집권이 들어가 일반 기사처럼 실수할 때가 있다. 이것도 자인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일관된 원칙과 충실성이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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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7일치 2면 ‘바로잡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제기한 정정보도 신청을 반영했으나 이마저 오보·왜곡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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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에선 어떻게

외국 언론들은 잘못된 보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유럽 언론들도 신뢰 회복을 위해 저널리즘 윤리 차원의 고민을 하고 있다.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벨기에는 모든 언론의 오보에 대해 정정보도를 의무화하고 있다. 독립기관인 저널리즘 윤리위원회에서 관련 법안을 마련하고 규제한다. 자료집엔 오·탈자처럼 단순 교정은 정정보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오보의 맥락과 원인, 시정 의지가 담겨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언론들은 최근 인종차별 외부기고를 내보내거나 인종차별을 희화화한 표현으로 관련 편집장들이 물러나는 사건이 잇따랐다. 언론의 공적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보여준 결과이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3일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의 ‘군대를 동원해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진압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실었다가 기자들과 독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앞서 동부지역 유력 일간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도 지난 2일 흑인 사망 항의 시위로 역사적인 건물들이 훼손됐다며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에 빗대어 ‘건물도 소중하다’라는 제목을 달아 독자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즉각 사과에 나섰다. 김유진 민언련 이사는 “미국 언론사들이 자신들의 실수나 잘못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언론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잘못된 보도 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바로잡습니다’는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언론의 정정보도가 실효성을 갖추려면 저널리즘 기준부터 되새겨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박태순 미디어로드연구소 소장은 “프랑스 언론은 저널리즘 활동을 위한 내부 윤리기준의 구속력이 강하다. 그래서 언론인들이 직무·직업윤리에 충실하다. 그러나 우리 언론사들은 자체적인 보도기준과 윤리강령이 있어도 실질적으론 사문화되어 있다. 저널리즘 기조가 무너진 상태에서 이념적 스펙트럼이 작동하니까 왜곡·편파 기사가 쏟아지는 것이다. 먼저 저널리즘 기준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 바로잡습니다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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