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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魚友야담] 자아도취·자기자랑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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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조선일보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코로나 이후 월요일 부서 회의는 줌(zoom)으로 합니다. 온라인 화상회의를 하게 해준 앱이죠. 모니터 화면에서 전 부원의 얼굴을 만납니다. 동료들이 분노할지 모르겠지만, 부장 입장에서는 이렇게 판단합니다. 사진이 실물보다 낫군. 의학의 힘, 아니 디지털의 힘이겠죠. 필터와 보정 기능의 혁신이 날마다 이뤄지고 있으니까요.

글 쓰는 초상화가 정중원의 산문집 '얼굴을 그리다'(민음사 刊)를 읽다가 시작된 자유연상입니다. 20세기 영국의 대표 시인 중 한 명인 W. H. 오든도 한 세기 먼저 깨달았더군요. "자화상을 그리겠다고 결심할 만큼의 자기의식에 도달한 사람은 거의 항상 자아도 발달시켰기에, 자신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인공적인 조명과 극적인 명암을 사용하게 된다."

요약하면 정직한 자화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조금 더 잘생기고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스마트폰을 45도 각도로 들어 올리고 앙증맞은 혹은 가증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버튼을 누르는 셀카를 떠올립니다. 사진 밝기 조정과 피부 잡티 제거는 양반이고, 때로는 눈을 키우고 턱선을 깎는 기능까지 요즘 셀카 앱들은 장착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편이니 삐져나온 코털까지 포착한 윤두서(1668~1715) 자화상이나 사시(斜視)도 감추지 않은 채제공(1720~1799) 초상은 정말 예외적 겸손인 거죠.

셀카와 자화상에서 시작된 자유연상은 이제 자서전으로 이어집니다. 삶을 정리할 즈음이면, 한 번쯤 자서전 생각을 하죠. 하지만 100%의 재현이란 불가능한 법. 자서전 역시 취사선택과 미화 욕망이 샘솟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독자가 자신뿐이라면 모르지만 타인도 읽어주기를 바란다면…, 셀카처럼 미화하고 보정한 자서전을 누가 읽고 싶어할까요.

자서전의 핵심은 돌아본다는 데 있습니다. 회고와 반성. 500년이 지났어도 몽테뉴의 '수상록'과 루소의 '고백록'을 읽는 이유입니다. 자아도취와 자기자랑 전성시대에 이 무슨 시대착오냐 비웃을지 모르지만, 종이 신문의 기자는 여전히 글쓰기를 자기 성찰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남에게는 도움이 되고 자신에게는 구원이 되는.

7월의 첫 주말입니다. 시원한 여름 되시기를.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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