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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백영옥의 말과 글] [156] 어떤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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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개정판 작업을 하기 위해 10년 전 쓴 원고들을 읽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실패의 연속이었던 내 20대와 관련이 있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대입부터 첫사랑, 첫 미팅, 10년 넘게 신춘문예에 떨어졌고, 망하기 직전 회사에서 돈을 떼이거나 좋아하던 가게가 망해버리는 징크스까지 내 20대 흑역사는 길었다.

문학을 고시 공부처럼 하면 안 된다는 말도 들었지만, 타고난 재능이 없어 보였던 나는 노량진 공시생들 틈에서 12시간씩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소설을 썼다. 하지만 문학 공모 인생 십수 년 동안 내가 알게 된 건, 사람의 마음을 진정 황폐화하는 건 '불확실성'이라는 것이었다. 공모에 당선됐을지, 떨어졌을지 모를 시간을 견디는 일이 자존감을 파먹는 동안 '난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명찰을 스스로 붙였던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취준생이라는 말은 연습생이나 지망생이라는 말만큼 사람을 두렵게 한다. '규정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한 아이돌 스타는 긴 연습생 시절을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죽을 만큼 운동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정작 더 가슴 아픈 건 대다수는 꿈이 상처로 남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조개에 박힌 모래와 이물질이 진주를 만드는 기적을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개 대부분은 그 이물질 때문에 폐사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중요한 건 복용량이다. 독성조차 '적당량'을 복용하면 약이 된다. 그러나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을 해친다. 사람의 마음도 비슷해서 너무 많은 실패는 독으로 내면화된다.

‘20대의 분노와 절망’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다가 “사람들은 대개 회한에 찬 얼굴로 그런 실패의 역사를 ‘청춘’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나는 그토록 혼란스럽고, 난폭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과거의 내 문장을 발견했다. 지금도 여전히 이 문장이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혜화동 소극장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노래한 그 시절의 김광석처럼.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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