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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미도의 무비 識道樂] [178] I need my name on th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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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당신을 연기하라. 다른 배역은 이미 다 찼다(Be yourself. Everyone else is already taken).’ 전기 드라마 ‘콜레트(Colette·사진)’에서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인생 행로를 따라가다가 떠올린 오스카 와일드의 촌철살인입니다. ‘남의 시선과 기대에 맞추며 사느라 자기만의 고유함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게 함의(含意)입니다.

무대는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출판 기획자 윌리는 사교계 난봉꾼입니다. 사치벽 때문에 경제난에 빠진 그가 아내 콜레트 몰래 베스트셀러 소설 시리즈의 저작권을 팔아넘깁니다. 문제는 윌리가 자기 이름을 붙여 낸 소설을 전부 콜레트가 썼다는 사실. 그녀가 저주합니다. "당신이 우리 아이를 죽였어요." '아이'는 콜레트가 소설을 위해 탄생시킨 여주인공 클로딘입니다.

"책에 내 이름 올려요(I need my name on the book)." 남편을 도우려고 유령 작가로 살아온 콜레트가 커밍아웃을 결심한 후 남편에게 한 명령입니다. 진실이 드러나면 매장될 것이기에 윌리가 요구를 무시하자 콜레트가 독립을 선언합니다. "역사를 쓰는 건 펜을 쥔 사람이에요(It is the hand that holds the pen that writes history)." 자기 이름으로 창작하겠다는 경고입니다.

'여성이 쓴 책은 안 팔린다(Women writers don't sell).'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서는 독립심 강한 신여성을 그린 콜레트 소설은 이 편견을 보란 듯이 깨뜨립니다. 최고 작가 반열에 오르는 동안 그녀는 연극 분야에서도 혁신적 생각을 발휘하는데, 영화는 배우 콜레트가 연극 무대에 서는 찬란한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전 무대에서 동성(同性) 배우와 연인임을 커밍아웃한 직후입니다.

“내가 진짜 클로딘이에요.” 대단원에서 콜레트가 외치는 말입니다. 책 저작권이 딴 데 넘어갔으나 독창적(original) 여성상인 클로딘처럼 자신도 제 목소리 내는 당당한 존재, 모방을 거부하는 고유한 존재로 살아가겠노라 선언한 겁니다. ‘모방하는 삶보다 창의적 삶이 가치 있다(An original is worth more than a copy)’는 진리를 웅변한 겁니다.

[이미도 외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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