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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한국일보 사설] 최숙현 죽음 부른 체육계 인권 실태, 이대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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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국가대표와 청소년대표로 활동한 고 최숙현 선수가 2013년 전국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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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선수 사건은 만연한 체육계의 인권 침해 실태와 견고한 카르텔을 보여 준다. 생전 고인은 경찰은 물론, 대한체육회, 국가인권위, 대한철인3종협회, 경주시청에 도움을 호소했지만, 구제받지 못했다.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국가대표를 지낸 유망주이자 귀한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엔 구조적 책임 또한 있었던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감독의 경우 욕설은 다반사였고, 며칠씩 굶기는 것도 모자라 슬리퍼로 뺨을 때리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녹취록엔 팀 닥터가 폭언을 하면서 뺨을 때리거나 발로 몸을 걷어차는 소리가 담겨 있다. 생전 고인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고인의 부친은 딸과 함께 올해 초 가해자들을 고소하고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도 진정을 넣었지만, 쉬쉬하는 분위기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난 4월 고인의 신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스포츠인권센터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제대로 진상 조사만 했더라도 고인이 세상을 등지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윤희 제2차관을 단장으로 특별조사단을 꾸려 진상조사에 나섰다. 여야 국회의원들도 앞다퉈 ‘최숙현법’ 제정을 약속했다. 어딘가 기시감이 들지 않나. 2년 전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미투’를 했을 때도 정부와 정치권, 체육계가 나서서 (성)폭력 근절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그동안 바뀐 게 무엇인가. 이번엔 달라야 한다. 진상을 밝혀 가해자들을 엄벌하는 건 물론, 은폐 시도가 있었다면 그 관련자들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도 시급하다. 심 선수 사건으로 마련된 운동선수보호법이 다음달 5일 시행되지만 지도자가 아닌 팀 닥터 같은 관계자는 법적 근거가 없어 가혹 행위가 확인돼도 자격 박탈 등의 조치가 어려워 보완이 필요하다. 지금도 어디선가 제2의 최숙현이 눈물을 삼키고 있을지 모른다. 아까운 목숨을 잃고 나서야 뒤늦게 분주히 움직이는 건 이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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