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이주영의 과학돋보기] 크게 늘어난 정부 R&D 예산이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정부의 2021년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이 21조6천억원으로 확정됐다. 올해보다 9.7% 늘었다. 올해 R&D 예산이 지난해보다 2.9% 증가한 것에 견줘 증가 폭이 3배 이상 커졌다.

R&D 예산이 이처럼 증가한 데에는 지난해 일본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수출 제한 조치와 올해 초부터 계속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영향이 크지만, R&D 예산 확대는 수십 년째 이어지는 전통적인 정책 기조다.

연합뉴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정부의 R&D 사업 예산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R&D가 우리 경제발전의 토대가 됐듯이 길어지고 있는 정체 국면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열쇠 역시 R&D에서 찾아야 하기에 더욱더 그렇다.

문제는 매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국내 R&D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느냐 하는 것이다. R&D 시스템 자체가 비효율적이라면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성과가 제대로 나올 리 없다.

국내 R&D 시스템에 대해 높은 투자 비중과 비교해 질적 성과가 낮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는 비판과 함께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12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우수학술지 논문 수, 인용 건수, 노벨상 등은 부족하다"며 R&D 혁신을 주문한 바 있다.

국내 R&D 시스템이 '고비용 저효율' 지적을 받는 요인 중 하나로 R&D 예산을 기초연구보다 응용·개발 연구에 지나치게 많이 투입한는 정책을 수십 년째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연구와 응용·개발 연구 R&D 예산의 비율은 4대6 수준으로 미국 등 선진국과는 정반대 구조다. 선진국은 정부 R&D 예산의 60% 정도를 기초연구에 투입하지만 우리나라는 60%를 기업이 도맡아야 할 연구에 투입한다는 의미다.

정부 R&D 예산의 60% 이상을 응용·개발 연구에 투입하는 전략은 소위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압축성장을 추구할 때는 매우 성공적이었음이 경제 발전으로 증명됐다.

하지만 이런 R&D 시스템이 선진국 문턱에 진입해 '추격자'가 아니라 '선도자'(first mover)가 되려고 하는 우리나라에 더는 맞지 않는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다.

이 때문에 과학계에서는 지난해 일본 정부의 소·부·장 수출제한 후 급격히 증가한 관련 R&D 예산과 내년도 국가 R&D 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21년 부처별 주요 R&D 예산현황. 단위 억원]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내년도 배분·조정안에서 응용·개발 연구가 대부분인 산업통상자원부의 R&D 증가율(13.7%)이 기초연구 비중이 높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증가율(7.1%)보다 배 정도 높다는 점에 주목한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해양수산부도 R&D 예산이 각각 13.2%와 13.7% 늘었다.

연구 분야별 R&D 예산 증가율도 감염병 대응 117.2%, 디지털뉴딜 48.9%, 그린뉴딜 40.4%, 소·부·장 22.3%, 3대 중점산업(바이오헬스·미래차·시스템반도체) 25.5% 등으로 기초연구 예산 증가율(15.8%)보다 월등히 높다.

과학계는 이런 R&D 투자 확대가 일본의 소·부·장 수출제한과 감염병 대응 등 사안의 긴급성 비춰 필요하긴 하지만 이로 인해 정부가 추진해온 기초연구 확대 등 R&D 혁신의 동력이 약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정부는 급격히 늘어난 R&D 예산의 효율적 집행은 물론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는 한국판 뉴딜과 3대 중점산업의 성패가 창의적 기초연구에 달려 있음을 인식하고 R&D 혁신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과학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scitec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