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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르포] 뙤약볕도 못이긴 분노...6.17대책이 쏘아올린 '커다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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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 카페' 회원들, 4일 서울 신도림역 집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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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전국민이 무당도 아니고 집 살 때마다 점을 봐야 하나요. 문통(문재인 대통령) 오래 지지해 왔는데 이번에 아예 돌아섰습니다."('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 카페' 임시 운영진 조모씨·35세)

"하도 답답해서 금융위에 전화를 걸었는데, 받고 바로 끊어버리더군요. 국민들이 이렇게 답답해하는데 답은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카페 회원 오모씨·40대)

"카페 회원 중 계약금 4000만원을 포기한 분도 계세요. 나라에서 자살하는 사람 몇 명 봐야 철회해줄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억울함, 불신, 원망, 분노로 가득해요."(카페 회원 김모씨·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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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정오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역 1번출구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수도권 각지에서 올라온 '화난 국민들'로 바글거렸다. 모두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이라는 포털 사이트 카페의 회원들이다. 대부분 1주택자인 이들은 분양권을 산 후 이사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다 '대출 규제 소급적용' 폭탄을 맞았다.

이들은 스스로가 대단한 시위꾼이어서 이 자리에 나선 게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이전까진 먹고살기 바빠 정부정책에 큰 관심을 두지 못했고 나서는 걸 즐기지도 않았다. 마이크와 피켓을 들고 이리저리 뛰던 임시 운영진 3명조차도 "이런 일에 나선 건 처음"이라며 연신 어색해하는 모습이었다.

경기 의정부에서 온 운영진 조모씨(35세)는 "장인어른이 돌아가시며 형제들이 n분의1로 상가주택 지분을 가졌는데, 이로 인해 3주택자가 됐다. n분의1만 가져도 주택 하나 가진 셈 치니까"라며 "거동이 불편하신 장모님을 모시기 위해 양주 아파트 분양권을 샀고 기존에 살던 집은 처분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대출 규제가 생겨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형제들과 협의해 상가주택을 처분한다 해도 양주 아파트는 3년 전매제한이 걸려 있다"며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데 도대체 어쩌라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이날 집회에 나선 이들 대부분이 정부정책 폐기라는 극단적 방향을 원하는 건 아니라고 전한다. 그는 "좋은 취지로 법을 만들었겠지만, 이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한명이라도 생긴다면 교정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경기 구리에서 왔다는 오모씨(40대)는 "노부모 특공(특별공급)으로 청약 당첨이 됐고, 담보인정비율이 60%까지 나와야 겨우 (자금을) 맞출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이제 와서 40%밖에 안 된다고 하니 마음이 너무 힘들다. 당장 8월 입주인데"라고 토로했다.

그는 "문통을 굉장히 좋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도 광화문에 갔다"며 "정부나 금융위는 전화를 받지 않고 지난달 19일 넣은 민원에도 답이 없다. 대통령 당선되고 국민이 먼저, 사람이 먼저를 외치던 그 사람은 어디 갔나"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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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에 나선 회원들에 따르면 지난 며칠 새 수명이 2000만~4000만원에 달하는 계약금을 포기하고 카페에서 탈퇴했다.

인천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왔다는 김모씨(40대)는 "인천에 집이 있고 2022년 입주 예정인 분양권도 하나 있다. 청약 당첨의 기쁨은 잠시더라"며 "돈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갭투자하고 부동산을 사고팔 것"이라고 넋두리했다.

이어진 자유발언 시간에 나선 한 여성(서울 영등포 거주)은 "우리 부부는 IMF 외환위기 때부터 30만원짜리 월세를 살다 60세가 넘어서야 경기 시흥에 아파트 두 채를 분양받았다"며 "이제야 노후걱정 안 하고 살겠다며 남편과 손잡고 웃던 게 엊그제 같은데 6·17 이후 지옥으로 떨어졌다. 도대체 어떤 형편이어야 정부가 말하는 서민에 해당할 수 있는 건지 묻고 싶다"며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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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을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네 가족의 가장이라고 소개한 30대 남성은 "친구들이 청약통장을 잘 써 주택담보대출 70%를 받고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게 부러웠다. 어릴 때 두 살 터울 동생이 교통사고로 떠난 기억이 있어, 내 아이는 안전한 아파트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며 "청약 가산점을 얻기 어려워 송도에 있는 아파트를 웃돈 주고 구매했고 아이들과 아내와 너무나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사 준비로 한창 행복해야 할 지금 계약금 4000만원을 날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도 못할 만큼 불안하다. '아빠 이사 언제 가' 하고 묻는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며 짜증을 내는 스스로가 밉다"며 "서민이면서 좋은 환경을 욕심 부린 게 잘못이고 불법이라면 정부에 용서를 빌고 싶다"고 울먹였다.

경기 수원에서 온 한 남성은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계약금을 냈다"며 "남은 돈은 신장이라도 떼서 마련해야 하나 싶다. 혹시 몰라 저녁마다 대리(운전)를 뛰고 있다"고 했다.

재건축아파트에 적용된 '실거주 2년' 요건의 부당함을 성토하고 나선 이도 있었다. 60대 후반 여성 모씨는 "재건축아파트라고 하면 강남 은마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나는 자금이 부족해 출가한 딸과 공동명의로 은마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작고 싼 아파트를 샀다"며 "딸은 해외에 있기 때문에 같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 집을 샀겠느냐"고 분노했다.

자유발언을 듣던 운영자 모씨는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모여 광화문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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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은 기자 ginajana@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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